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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Security

하마스 공격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많이 닮았다 – 충격적인 공격과 정치적, 정보 실책에 대한 의문들

1973년 IDF 복무 중 노획된 이집트 BTR-50 장갑차 수송차

Image Source : Wikimedia Commons

by Dov Waxman

First Published in: Oct.08,2023

Nov.03, 2023

그 유사점은 놀랍지만 확실히 우연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인 이집트와 시리아의 합동 군사 공격으로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 지 정확히 50년 하루 만에 이스라엘은 또다시 기습 공격을 당했다.

 

2023년 10월 7일 새벽, 하마스 무장세력은 육지, 바다, 공중을 통해 이스라엘 남부를 침공하고 이스라엘 깊숙한 곳에 수천 발의 로켓을 발사했다. 몇 시간 만에 수백 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갔으며 결국 전쟁이 선포되었다. 이스라엘의 맹렬한 보복으로 이미 가자 지구에서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번 전쟁이 끝날 때 쯤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마스 공격이 시작되고 이스라엘 사망자 수가 증가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2023년 하마스 공격과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간 유사점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두 전쟁 모두 유대인의 성일(聖日)에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1973년 기습 공격은 유대인의 속죄일인 Yom Kippur 날에 감행되었고, 이번에는 유대인들이 토라를 읽는 Simchat Torah 날에 이루어졌다.

 

이스라엘과 인접한 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 지구를 통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1973년 10월에 전달한 것과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은 결코 현재의 현상 유지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인들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할 것이다. 

하마스의 충격적인 군사 작전으로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고 있다

1973년 전쟁은 아랍-이스라엘 분쟁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내 정치에도 분수령이 되는 순간임을 입증한 바 있다. 하마스가 도발한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일까?

두 전쟁 모두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에 당했다

확실히, 갑작스러운 전쟁 발발은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또 다시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1973년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쟁도 이미 엄청난 정보 실패의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이스라엘 군(軍) 정보국은 적들이 이스라엘이 취약하다고 믿고 있다고 이스라엘 정부에 경고했지만, 이스라엘 정보 기관은 하마스가 감히 공격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통치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적어도 한동안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평가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이스라엘의 엄청난 불균형적 보복이 가자 지구에 막대한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하마스가 감히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고 그 중 많은 이들이 가난속에 허덕이고 있는 가자 지구는 2021년 5월 마지막으로 벌어진 대규모 전투의 피해로 부터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많은 분석가들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수출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믿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하마스의 정치적 라이벌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통치하는데 이 자치 정부는 이미 약하고 인기가 없어 하마스는 이 자치 정부를 약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정보 평가는 1973년 전쟁 발발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의 적들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월성 때문에 제지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적들의 전쟁 의지를 잘못 판단했을 뿐만 아니라 1973년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하마스 기습 공격 때에도 적의 전쟁 준비 태세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광범위하고 정교한 정보 수집 능력을 고려할 때 이번의 실패가 더욱 눈에 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코앞에서 수개월 동안 이 기습 공격을 신중하게 계획했음이 틀림없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1973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저지른 최악의 정보 실패다.

 

그러나 이것은 정보 실패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 실패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분명히 이 정도 규모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실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방위군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배치되었다.

 

이스라엘 방위군 수뇌부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정부의 사법 개혁 시도에 항의하여 복무를 거부하는 엄청난 수의 이스라엘 예비군 때문에 이스라엘의 군사 준비 태세가 많이 약화되었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방위군은 이스라엘 방어 요새, 특히 가자 지구 주변에 건설된 고가의 첨단 기술 장벽이 2021년 5월 당시처럼 하마스 무장세력이 이스라엘에 진입하는 것을 저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1973년 수에즈 운하를 따라 건설된 소위 Bar-Lev 방어선이 이집트 군인들이 운하를 건너는 것을 막지 못한 것처럼 가자의 첨단 장벽도 하마스 무장세력이 이스라엘을 침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마스 전사들은 그 장벽을 우회하거나 불도저로 밀고 이스라엘로 들어왔다. 

비난 게임이 시작되다

1973년 전쟁 이후와 마찬가지로 이번 전쟁 후에도 동일한 비난 게임이 전개될 것이다. 1973년 전쟁 이후 Agranat 위원회가 설치된 것처럼 이번 전쟁 후에도 비슷한 조사 위원회가 설치될 것이다. Agranat 위원회는 이스라엘의 군사 및 정보 기관을 비난하는 신랄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하마스 기습 공격에 대해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을 만한 곳은 이스라엘의 군대와 정보 기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치적 기득권 세력이고, 특히 네타냐후 총리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1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2009년부터 이스라엘을 이끌어왔다.

 

1973년 전쟁 역시 정보 실패만이 아닌 정치적 실패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 특히 골다 메이어 총리와 모셰 다얀 국방장관이 주된 비난을 받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 전(前) 몇 년 동안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외교적 제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이집트와의 평화를 희생하더라도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의 일부를 계속 차지하기로 결정했다.

 

메이어 총리와 마찬가지로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하마스,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간 장기 휴전을 중재하려는 이집트의 최근 노력을 무시했다. 그리고 현(現) 이스라엘 극우 정부는 팔레스타인인과 평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더욱이 네타냐후 정부는 이스라엘 대법원의 권한과 독립성을 축소하려는  인기 없는 정책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공식 합병에 대한 잠재적인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네타냐후 정부가 추진해온 사법 개혁으로 인해 발생한 이스라엘 내 혼란과 깊은 분열은 하마스가 지금 이 시기에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임이 거의 확실하다.

 

보다 광범위하게 보면,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하마스를 억제하고 저지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의 전략이 재앙으로 끝났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인들, 특히 남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으며,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16년 동안 가자 지구를 봉쇄해 경제를 마비시키고 200만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생감옥 생활을 하도록 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릎을 꿇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의한 탄압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하마스의 통제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국경 양편의 무고한 민간인들은 이스라엘-하마스 대결로 큰 대가를 치렀다.

 

1973년 전쟁의 여파로 메이어 총리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고, 몇 년 후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집권해 온 집권 노동당은 1977년 총선에서 메나헴 베긴이 이끄는 우익 리쿠드당에 패배했다. 1977년 총선은 1973년 전쟁 이후 당시 집권하던 노동당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 상실로 노동당이 패배를 맛본 이스라엘 국내 정치의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이 마침내 오랫 동안 이스라엘 정치를 지배해 왔던 네타냐후 총리와 리쿠드당을 끝장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이미 네타냐후 총리에게 등을 돌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스캔들, 사법부 권력을 탈취하려는 그의 행동, 그의 연립 정부가 대표하는 노골적인 우파 성향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마스의 파괴적인 기습 공격은 확실히 이스라엘의 “Mr. 안보”라고 불리우는 네타냐후의 주장과는 모순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는 이번 전쟁의 결과와 이 전쟁이 이스라엘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이 무엇이든, 1973년 전쟁이 그러했듯이 이번 전쟁의 발발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슬픔과 분노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분명하다.

 

사실, 이번 전쟁은 아마도 1973년 전쟁보다 이스라엘인들에게 훨씬 더 충격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1973년에는 이집트의 기습 공격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군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포로로 잡혀 살해된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스라엘 영토안에서 잡혀 갔으니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전쟁은 1973년의 전쟁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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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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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v Waxman

Dov Waxman은 미국 UCLA 정외과 교수이며 이스라엘학과 Rosalinde & Arthur Gilbert Foundation 학과장이다. 그는 UCLA Y&S Nazarian Center 디렉터이기도 하다. 이전 그는 미국 Northeastern University 의 유대교 역사와 문화 연구학과 Stotsky Professor 였다. 그는 미국 Johns Hopkins University 에서 국제관계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연구 분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 정치와 외교정책 등이다. 그는 여러 학술 논문과 4편의 저서를 썼다. 최근 저서로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 What Everyone Needs to Know" (Oxford University Press, 2019)가 있다. 그가 쓴 기사는 The New York Times, The Washington Post, The Los Angeles Times, The Guardian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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