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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Security

군대와 독재자: 푸틴의 군대가 실패한 이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그의 군인들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Zoltan Barany

First Published in: Jan.15,2023

May.08, 2023

요약

이 에세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군이 왜 실패했는지를 다섯 가지 핵심 요소로 분석한다. 러시아군이 실패한 첫 번째 이유는 푸틴이 군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여 군사 및 국방 문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와 정직한 토론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군개혁 실패 때문이다. 소련 붕괴 이후 비대하고 장비가 빈약한 군을 정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세계 최고의 군대에 필적하거나 그들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21세기에 적합한 전투력을 가진 군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셋째, 러시아군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넷째, 러시아의 거대한 방위 산업은 무기를 너무 적게 생산하고 있으며, 거기에다 실제 생산되는 무기는 정교한 서방 무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조지아, 크림반도, 시리아에서의 군사작전은 허약한 적을 상대로 수행되었으며, 우크라이나군과 같이 단호하고 잘 무장한 적을 상대로 한 재래식 지상전에서 러시아군은 군사작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요약하면, 러시아군은 독재, 안보 집착, 초중앙집권적 의사결정, 민간과 군 당국 사이의 기능 장애, 비효율, 부패, 잔인함으로 가득 찬 러시아 국가를 반영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전 그리고 직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군을 짧은 시간 내 패퇴시키고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군은 냉전 이후 어려운 시기에 무너졌지만 20년 이상 푸틴의 통치로 러시아군이 효과적인 군사 기계로 탈바꿈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2014년 초, 표시가 없는 녹색 위장복을 입은 러시아군은 거의 유혈 사태나 큰 노력 없이 우크라이나로 부터 크림 반도를 빼앗았다. 2년 후, 한 분석가는 러시아 공군이 알 아사드 정권 편에 서서 시리아에 개입한 것을 두고 “우리 시대의 가장 극적인 군사-정치적 사건”이라고 불렀다. 2021년 또 다른 평론가는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뿐만 아니라 조지아(2008)에서의 러시아의 성공적인 군사 캠페인을 지적하면서 푸틴이 “러시아 군대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잘못된 평가는 러시아의 군사적 지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군은 독재, 안보 집착, 초중앙집권적 의사결정, 민간과 군 당국 사이의 기능 장애, 비효율, 부패, 잔인함으로 가득 찬 러시아 국가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군의 실패 원인으로 다섯 가지 핵심 사항에 주목해야 한다. 첫 번째는 푸틴이 군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고 독립적인 입법부가 군사 및 국방 문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탐구적이고 정직한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활동을 허용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군 개혁의 실패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가 보는 바와 같이, 비대하고 장비가 부족한 포스트 소비에트 군을 정비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세계 최고의 군대에 필적하거나 그들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21세기에 적합한 전투력을 가진 군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러시아군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위 장교들은 권한 위임을 완고하게 거부하고 하급 장교가 이니셔티브를 행사하고 리더십 자질을 개발할 기회를 강탈한 반면, 대부분의 부사관(NCO)과 부대는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째, 대부분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러시아의 거대한 방위 산업은 무기를 너무 적게 생산하며, 실제로 생산되는 무기는 정교한 서방의 무기에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지아, 크림반도, 시리아에서의 군사작전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군사작전은 허약한 적들에 대해 수행되었으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과 같이 단호하고 잘 무장한 적을 상대로 한 재래식 지상전에서 군사작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모두 군 통제에 관여한다. 명령 체계는 군대에 대한 각 기관의 제도적 책임과 마찬가지로 성문화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법률은 다양한 국내외 시나리오에서 군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규정한다. 한 국가의 입법부는 국방예산을 통과시키고 예산지출을 감독하며, 행정 수반은 총사령관 역할을 하고, 국방장관은 현역 장교가 아니며, 민간인(언론인과 국방에 초점을 맞춘 시민단체 출신을 포함)은 군에 대한 조언을 하고 감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행정부가 군을 직접 통제하는 반면 입법부(존재하는 경우)와 지역 당국은 발언권이 없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독립적인 안보 정책 전문가, 학자 또는 언론인이 활동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는 없다. 크렘린은 러시아군을 운영하고 움직이는데, 오늘날 크렘린은 푸틴을 의미한다. 그는 가까운 친구가 거의 없다. 2012년부터 국가 안보 분야에서 푸틴의 주요 보좌관은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 국방장관(군 경력이 없음)과 발레리 게라시모프(Valery Gerasimov) 연방군 총참모장이었다. 이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전임자를 해임한 푸틴 대통령을 위해 따라 봉사한다.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 군사 작전”을 잘 처리하지 못하자 푸틴은 크게 좌절하고 있고(우크라이나 전쟁 또는 침략이라고 말하면 러시아 시민은 수년 동안 감옥에 감금될 수 있음)이로 인해 쇼이구 국방장관의 입지는 크게 줄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저명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쇼이구 국방장관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0년 푸틴이 집권했을 때 군부와 군 수뇌부는 군사 개혁을 포함한 외교 및 국방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 푸틴은 보안군을 포함해 모든 군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장관 재임 기간(2007~2012), 크렘린의 군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일반 참모 장교들에 대한 무혈 숙청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이들이 너무 독립적이며 푸틴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은 중앙군사행정부서 직원을 30% 이상 줄였으며 대부분 장군과 대령을 해고했다. 지난 12년 동안 러시아 장군은 푸틴의 하인이 되었다. 이들의 경력은 단순히 전문적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푸틴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에 달려 있다. 서류상으로 국방부는 의회와 의회의 국방 및 안보 위원회에서 답변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실에만 답변을 한다. 대통령은 국내 또는 해외에서 군대를 배치할지의 여부와 그 시기, 장소 및 방법을 결정한다. 푸틴은 중앙 집권주의자이다. 러시아는 명목상으로는 연방국가이지만 지방 의회는 최근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예비군 소집과 같은 전통적인 업무조차 수행할 능력을 상실했다. 국방 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글을 쓴 언론인은 공개 소스 보도를 한 경우에도 장기 투옥을 당했다. 자유 민주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방어적 동맹인 나토의 회원국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같은 권위주의 통치자가 그의 나라의 국경을 “조정”하려고 할 때 억제를 할 수 있지만, 푸틴은 그러한 장애물에 직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집단안보조약기구(구소련 공화국으로 구성됨)를 지배하고 있는 반면, 독재자 클럽인 상하이 협력기구는 러시아 군대에 대한 푸틴의 통제를 결코 제한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이상 동안 러시아 군대는 틀림없이 푸틴의 군대였다. 제도적으로 균형 잡힌 민간의 권한, 투명성 또는 책임감의 원칙도 그의 통제를 방해하지 못한다.

개혁 중단

냉전이 끝났을 때 러시아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은 러시아군의 약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1990년대 대부분 기간 군 규모의 축소 이외에는 개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군들은 군의 구조적 개혁에 반대했고, 정치 엘리트들은 개혁을 밀어 부칠 의지가 부족했으며, 자원은 부족했다. 러시아군은 1, 2차 체첸 전쟁(1994–96; 1999–2009)에서 승리했지만 군사작전은 당황스러운 수준이었다. 2008년 8월 또 다른 작고 가난한 이웃 국가인 조지아에서의 승리도 러시아의 군사적 단점을 보여 주었다. 지휘, 통제, 통신 및 정보 시스템의 작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장교들은 군 부대에 도착하기 위해 종군 기자의 휴대전화를 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군은 12일 간의 전쟁 동안 4대의 항공기가 격추되었다고 (조지아인들은 21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함)인정했는데, 무인 항공기(UAV 또는 드론)가 정찰 비행을 할 수 있었다면 이것은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탱크와 전투기는 아프간 전쟁(1979-89) 이후 정비되지 않았고, 스마트 무기와 최신 통신 시스템은 이용할 수 없었으며, 국방부는 구식 무기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방산 업체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러한 러시아군의 약점에 대한 대응으로 2008년에 군 개혁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군 개혁은 여전히 대규모 군 동원에 기반을 둔 구소련식 군대를 훨씬 날씬하고 전문적인 군대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한계가 드러났지만 2008년 이후 이루어진 러시아군의 변화는 상당했다. 푸틴의 전권 위임으로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은 군 개혁에 대한 제도적 저항을 무너뜨리기 위해 완고한 고위 장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거나 현금을 듬뿍주어 퇴직시켰다. 군 구조는 합리화되고 간소화되었다. 대규모 부대의 수는 1,890개에서 172개로 감소했고, 65개 군사 대학은 10로 줄었으며 16개나 되던 소련 시대 군관구는 그 수가 4개가 크게 줄었다. 국방 개혁의 주요 목적은 단기간의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보여 주었던 러시아 군인과 나토 군인 간 질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거나 적어도 대부분의 러시아 부대를 채운 비정예 부대의 훈련 및 전투 준비 태세를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군 현대화는 또한 군 병력을 백만 명으로 안정화하기를 원했다. 러시아의 공식 데이터는 신뢰할 만한 하지는 않지만,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군(육군, 해군, 공군)의 총 병력은 700,000에서 900,000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은 장교 규모를 줄이고 praporshchiki (대략 준위와 동일한 직급)를 단계적으로 폐지했으며, 계약(직업) 군인의 수를 대폭 늘렸다. 직업군인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그 가족의 근로 조건, 주택, 복지 및 연금 제도를 개선하는 데 막대한 돈을 사용하였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군 개혁을 진행하여 2020년까지 직업 군인의 수를 410,00명으로 늘렸다. 이때 징집병은 260,000명에 불과했다. 징집병은 러시아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크렘린은 군을 전부 직업군인으로 채우려 하지만 그렇게 할 여력이 없고, 그래서 부족한 군인을 채우기 위해 징집제가 필요하다. 군 개혁 계획은 2019년까지 50만 명의 직업 군인을 원했지만 405,000명만이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수치는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2012년 현재 직업 군인은 평균 러시아 민간인보다 25% 더 많은 급여를 받았다. 군인의 복리 혜택도 비교적 관대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핵심 문제였다. 직업 군인의 급여와 복리후생이 줄어 들면서 군 경력이 덜 매력적이게 되었고 지원자의 자질도 떨어졌다. 그 결과 군은 바람직한 신병을 찾고 있으나 그런 신병은 그 수가 적고 결국 덜 바람직한 신병을 충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능한 직업 군인 없이는 자질높은 부사관으로 가득한 러시아군의 꿈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짜르 시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비에트 또는 러시아 군대의 전통적인 약점은 직업 부사관의 부재였다. 현대 군대는 전문적인 “부사관”에 의존한다. 그들은 상당한 자율성을 누리고 있다. 부사관은 위임 장교와 징집 사병이 함께 잘 일하도록 하고, 군대에 훈련, 규율, 그리고 (적어도) 가장 힘든 실전 리더십을 제공한다. 러시아의 군 개혁은 전문 부사관 부대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러나 부사관들의 훈련의 깊이와 권한을 부사관에게 위임한다는 개념이 오랫동안 낯선 개념이었던 군대에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이니셔티브가 주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국방부는 2009년 부사관 학교를 설립했지만 매년 배출하는 2000명의 부사관이 군 문화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2010년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이 해고한 하급 장교 7만 명은 서방에서 부사관의 업무로 분류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재임명되었다. 이용 가능한 데이터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현대 군대에 필수적인 유능한 부사관 부대를 배치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임을 보여 주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부사관 부대가 자신의 성과를 점점 더 많이 보여주기를 바란다. 러시아 군 개혁은 다른 영역에는 손을 대지도 않았다. 그런 영역에는 서구 군대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온 전투 의학이 포함된다. 부상병을 신속하게 데려오고 중환자 치료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많은 사상자를 감내한 역사를 가진 러시아군은 이에 거의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최근 사임한 젊은 러시아 군의관들은 “이용할 수 있는 의학 장비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으며 단지 응급 처치만 가능했다” 고 주장했다.

장군과 군인

부하에 대한 신뢰 부족과 권한 위임에 대한 거부감은 러시아군의 모든 지휘 수준에서 나타난다. 독립적인 사고와 창의성을 위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 관습에 젖어 최고 사령부에서 내려오는 명령만을 기다리는 구(舊)소련 시대의 관행으로 종종 전장에서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결과가 도출된다.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은 크렘린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가진 장교를 포함하여 약 3분의 1의 고위 장교를 해고 또는 스스로 퇴역하도록 하였다. 그는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신호를 잘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위 장성만이 승진하게 되는 군 문화를 만들었다. 군 최고위층 장성들도 이제 푸틴을 포함한 상급자들을 화나게 할까 두려워 자신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최고 사령부의 일부 인사는 푸틴의 계획, 특히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하기 위한 번개 공격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인사들은 러시아 군대와 장비로는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고가 사실로 판명되자 크렘린은 이들 장군들로 하여금 새로운 군 전략을 세우도록 허용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하는 오랜 러시아의 군 전통인 소모전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중요한 도시인 헤르손 주변의 전투와 다른 분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이 보여주듯, 러시아의 대규모 포격과 공중 폭격도 실패하자 푸틴은 고위 사령관 명단을 세 번이나 바꿨다. 2022년 4월, 6월, 그리고 9월에 크렘린은 보다 나은 전투 성과를 위해 장군들을 교체했다. 2022년 10월 초, 푸틴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측면과 놀란 러시아 진영의 후방 지역으로 반격을 가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 전황을 뒤집는 임무를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에게 맡겼다. 수로비킨 장군은 여러 가지 명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복잡한 전투 환경에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완전한 무자비함, 부패와 잔인성, 부하 학대에 대한 명성이 이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그는 푸틴과 러시아군에 완벽하게 적합한 인사인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군사적 결정을 할 때 푸틴이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하는 것을 보게 되는 데 이때 고위 사령부에 대한 그의 불신이 드러난다. 2022년 9월 우크라이나군이 반격하자 그는 이제 자신이 군사 전략을 세우겠다고 장군들에게 말했다. 푸틴이 전쟁을 세심하게 관리하면서 그 자신이 낮은 단계의 전술적 결정까지 내리고 또 최전선에 있는 장군들에게 크렘린으로부터 명령을 받도록 지시를 한다. 서방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대령이나 준장의 수준에서 하는 작전 결정을 내리고” 군대의 이동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의 명령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한다 (이것은 군대와 장비 손실을 초래하는 접근 방식이다. 왜냐하면 전술적 후퇴가 금지된 부대는 결구 포위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푸틴의 개입이 강화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예기치 않게 민첩하고 맹렬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직면해 얼마나 형편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에 대해 그의 지휘관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군 경력이 없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자신의 군대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했을까? 2008년부터 모든 계급의 병사들에 대한 군사 교육 및 훈련이 개선되었다. 훈련도 많아 졌고, 특히 육, 해, 공군에서 수만 명의 인력이 참여하는 대규모 합동 훈련도 실시되었다. 공군 조종사를 위한 비행 시간도 강화되었고, 항공기에 대한 유지 보수 작업도 개선되어 조지아와 시리아 전투에서 항공기의 기계 고장과 전투에서의 손실도 줄어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맥락에 맞추려면 소수의 정예 부대를 제외하고 러시아군의 훈련 및 유지 보수 기준은 전반적으로 중간 이상인 적이 별로 없었으며, 세계 최고의 군대 수준에는 도달한 적이 없다. 급여 인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은 민간 노동 시장과의 경쟁에 직면하여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러시아 젊은이들을 유치할 수 없었다. 가족이 있는 장교에게 주택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으며 수년 동안 급여는 인플레이션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많은 부대에서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고 상사의 편애로 하급 장교는 경멸당하기 일쑤다. 일화에 따르면 민간에서 고용 기회가 많은 장교는 곧잘 사임하고 그만둔다. 2018년 보병 중대 정도의 작은 부대에 까지 잠폴리트(정치 장교)를 부활시킨 결정은 소비에트 연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러한 결정은 국가가 병사들의 충성심을 의심한다는 신호이다. 병역 의무 제도는 인기가 없었다. (군의관에게 뇌물을 주어 부적합 판정을 받음으로써) 병역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반면, 가장 절박한 사람들은 징병을 피하기 위해 나라를 떠나거나 고의적으로 부상을 입기도 한다. 때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신병에 대한 잔인한 신고식은 이를 줄이려는 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2008년 의무 현역 복무 기간이 1년으로 줄어 훈련을 마친 군인은 6개월만 복무하면 됐다. 육군이 전투 준비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부대는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지만, (아마 놀랍게도) 징집병은 엘리트 특공대 부대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육군은 2021년까지 징집병을 15만 명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그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원치 않는 징집이 더 흔해질 것이며 러시아군은 점점 더 잘 훈련되지 않고 의욕도 없는 군인들에게 의존해야 할 형편이다. 2022년 9월 21일 가을 징집 기간이 시작되기 불과 10일 전, 푸틴의 30만명의 예비군 소집으로 군 인력 문제에 새로운 초점이 맞추어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십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예비군 소집은 러시아에 있는 소수 민족에게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소수 민족에는 야쿠티야 북동부(키예프에서 5,600km)의 유목민 순록 목동과 소련과 러시아 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받고 크림반도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크림 타타르족이 포함된다.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이 실제 예비군이라고 해도 그들 중 일부만이 현역을 떠난 후 몇 년 동안 정기적인 훈련을 받았을 뿐이다. 이 부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추가 투입되기까지는 몇 달이 걸릴 것이다. 9월 29일 보좌관과의 화상 통화에서 푸틴은 자녀를 둔 아버지, 만성 질환자, 군 복무 연령이 넘은 일부 사람들을 소집하는 것과 같은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동원된 일부 중년의 병사들은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자신들은 ‘가축과 같은 환경’에 가두어졌고, 음식도 사먹어야 했으며, 맞지 않는 부츠와 군복은 물론 낡고 형편없이 무기를 보급받았다.” 푸틴은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도록 주 지사들과 관리들에게 일을 맡겼다. 그러나 자신의 정책이 지방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켰다는 얘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예비군동원 선언 후 첫 주 동안 최소 20만 명의 러시아 청년들과 그 가족들이 키르기스스탄, 몽골 등 주변국과 보다 먼 곳으로 도망갔다. 이들은 수백만 명의 동료 시민들과 합세하였는데 시민들 중에는 푸틴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표를 한 젊고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모스크바에 고용된 정예 부대와 민간 군사 회사는 러시아를 위해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민간 군사 회사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독일 작곡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용병 그룹인 바그너 그룹이다. 바그너 그룹은 전직 특수부대 중령이었던 드미트리 우트킨과 전과가 여러개인 푸틴의 측근이자 신흥 재벌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014년에 설립했다. 바그너 그룹은 우트킨이 한때 복무했던 러시아 군사 정보국인 GRU가 감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 그룹이 어떻게 급여를 받는 가에 대해선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자금은 러시아 신흥 재벌과 정부로 부터 나올 가능성이 높다. 휘장이 없는 제복을 입는 와그너 요원들은 2014년 푸틴의 크림 반도 점령 당시 처음 등장한 ‘작은 녹색 남자’였다. 이후 와그너 요원들은 시리아는 물론 리비아, 말리, 모잠비크, 수단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의 무력 분쟁에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 주에 바그너 용병 1000여명이 배치돼 막대한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인권침해와 전쟁범죄 얘기가 뒤따라 나오고 있다.

국가 방위산업의 실패

러시아 국가는 막대한 이익을 내는 러시아 산업(에너지, 은행, 무기 및 운송)의 주요 소유자이며 이를 운영하는 데 직접 관여한다. 국유 기업으로서 방산업체는 저렴한 신용 제공, 부채 탕감 및 경쟁 시장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린다. 국가가 방위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일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모든 면에서 볼 때 러시아 무기 제조업체는 자사 제품과 세계 최고의 무기 생산업체의 제품 간 차이, 특히 품질 격차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2005년경부터 러시아의 국방 개혁과 야심 찬 군비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엄청난 국방비 인상이 요청되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와 런던 국제전략연구소는 러시아의 국방예산이 1990년대 후반 약 200억 달러에서 2015년 현재의 공식 수치인 659억 달러(또는 러시아 2021년 국내 총생산의 4.1%). 로 4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발표했다. 이 금액은 명목상으로는 미국의 연간 국방비 지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이지만, 이 수치는 러시아의 실제 군사비 지출 규모를 크게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 명목상 수치가 아닌 구매력 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 수치를 사용하면 러시아의 효과적인 군사 지출은 연간 2,0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중국, 인도만이 러시아 보다 많은 국방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2011-20년 기간 동안 러시아의 국가 군비 프로그램은 군용 무기의 70%를 제조 또는 개조하도록 지시함으로써 방위 산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자 하였다. 러시아의 공식 소식통은 방위산업 업계가 이를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방위산업은 새로운 대포를 개발했고, 매우 정확한 순항 미사일을 도입했으며, 수백 대의 새로운 탱크(매우 평가된 T-90M 포함)를 군에 제공했고, 장갑차와 전자 장치 수백 대의 성능을 개선했다. 거의 500대의 새로운 전투기, 특히 레이더 유도 미사일로 무장한 수호이-27 전투기와 미그-31 전투기가 러시아 공군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수백대의 새로운 전투 헬리콥터와 현대화된 구형 전투기가 러시아의 영공 지배권을 확보하게 만들었다. 2020년에 시작되어 2027년에 종료될 최신 국가 군비 프로그램은 목표가 보다 온건하며, 이동성·물류·현존 무기 시스템의 최적화 및 표준화를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세계 No. 2 무기 수출국이 되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세계 무기 시장에서 러시아의 판매 점유율은 19%, 미국의 점유율은 39% 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 무기와 비교해 러시아 무기가 미약한 성능과 취약성을 보이자, 러시아에서 무기를 구매해 온 고객(상위 3개 고객은 중국, 인도, 이집트)들은 다시 러시아산 무기를 구매하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러시아 방위산업을 뒤덮고 있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급망 문제로 인해 배송이 지연되고 있고, 노후화된 공작기계를 교체할 돈과 연구개발비도 부족하고 품질관리 소홀도 만연하다. 최근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중앙 집중화되고 비효율적인 관료제, 취약한 지적 재산권 및 법치, 열악한 투자 환경, 만연한 부패, 불충분한 자금 조달이 창의성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교류에 의존하는 분야의 신속한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들이다. 러시아 무기 제조업체는 기술 정교함과 일반적인 품질면에서 서방의 무기와 경쟁할 수 있는 무기를 생산하기에는 아주 갈 길이 멀다. 정밀 유도 탄약, 표적 시스템, 강력한 장거리 드론을 대규모로 구축하는 일은 러시아 방위 산업의 능력 밖의 일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러시아 군산 조직체는 우크라이나 무기 생산업체와의 오랜 유익한 관계를 잃게 되었다. 이제 국제 제재로 인해 첨단 현대 무기를 생산하는데 핵심인 서방 광학 및 전자 제품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은 차단되었다. 기존 공장을 확장하는 것도 자금과 기타 필수품이 없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많은 팡파르와 허풍으로 발표된 야심 찬 군 개혁은 종종 거의 또는 전혀 이루어진 것이 없다. 군 개혁 원년인 2008년, 공수부대, 해군 보병부대, 특수부대 구성군으로 편성된 자율기동부대 창설이 제안됐지만 성과가 없었다. 5세대 전투기인 수호이-57을 생산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널리 알려진지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몇 가지 시제품만 생산되었다. 수호이-57 은 러시아가 시도한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이다. 공대공 및 공대지 전투가 모두 가능하도록 제작 예정인 이 전투기는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제작한 F-35 라이트닝 II 스텔스 전투기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책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는 미국과 9개 이상의 나토 국가를 포함하여 미국의 동맹국을 위해 수천 대가 생산되고 있다. 기술적인 후퇴,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인도의 결정, 2019년 12월의 전투기 추락(첫 번째 공개 시연에서)은 수호이-57 이 조만간 본격적인 생산 준비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소련 연방 시대 이후 보안 부문은 부정부패와 관련하여 경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21세기 러시아는 미국의 정치학자 카렌 다위샤 (Karen Dawisha)의 표현을 빌리자면 “푸틴의 도둑 정치” 국가가 되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1년 부패 인식 지수(Perception Index)는 러시아에 100점 만점 기준에서 29점의 점수를 부여하였는데 가장 부패가 적은 국가(88점을 받은 덴마크, 핀란드, 뉴질랜드)보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11점을 받은 수단)에 훨씬 더 가깝다. 국방 장관으로서 세르듀코프는 종종 무기 조달과 관련된 뇌물 수수와 사기를 뿌리 뽑거나 적어도 억제하고, 군대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따로 마련한 자금의 유용 근절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 횡령 혐의로 기소된 국방부 관리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세르듀코프를 국방 장관직에서 파면했다. 종종 수억 달러가 사라지는 대규모 부패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군 검찰은 최근 국방부 예산의 약 5분의 1이 도둑질을 당했다고 시인했다. 다른 군 관리들은 그것이 5분의 1이 아니라 2/5만큼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패와 푸틴에게 부패에 대해 말하기 두려워하는 상황이 러시아를 ‘눈가리고 아웅하는 겉치레 군(軍) 국가로 만들었다” 는 전(前) 러시아 외무장관 안드레이 코지레프(Andrei Kozyrev)의 최근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팔 아래 - 그리고 감동될 수 없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구 소식통이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인보도를 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언론들은 모두 진실을 왜곡할 동기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군사적 성과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낮았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가정이 틀린 데 대해 놀랐다.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러시아군의 성과는 표면적으로는 인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성과는 허약한 적을 상대로 한 성과였다. 조지아는 매우 작은 나라이며 소규모 군대는 제대로 조직되지도 않았다.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군은 거의 저항에 직면하지도 않았다. 시리아에서는 러시아 공군이 엄청난 능력을 보여 주었지만 그러한 성과는 방공 능력이 기껏해야 보통 수준인 시리아 반군을 상대로 거둔 성과였다. 러시아는 이러한 소규모 군사작전에 대부분 일반 군인이 아닌 정예 부대와 특수 부대를 파견했다. 요약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직면했던 부담스러운 전투 환경을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쓸 당시 우크라이나 전쟁은 발발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전 상황을 살펴보면 2008년 이후 러시아가 세계 1등급 군사 강국으로 등극했다고 주장한 많은 전문가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하향식 명령체계를 가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직면한 대부분의 실전 테스트에서 실패했다. 군사 계획가는 적을 과소평가하는 일이 거의 없다.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한 후 푸틴은 우크라이나 키예프가 2주 안에 점령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2022년에는 이틀이면 키예프를 점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최고 사령부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러시아 군인 수를 과소평가한 반면 그들을 환영할 현지인의 수는 과대평가했다. 큰 강과 그 지류로 갈라진 도시로 839제곱킬로미터에 걸쳐 300만 명이 거주하는 키예프와 같은 도시를 정복하려면 엄청난 수의 협력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2월 24일과 25일 키예프 북서쪽의 안토노프 공항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우크라이나군과의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키예프 시내에 대한 러시아의 신속한 공중 기동 공격 계획이 붕괴되어 버리자 러시아의 전쟁 캠페인은 무너졌다. 잘못된 작전 계획, 부주의한 병참, 통합 무기 조정의 부족은 모두 러시아 최고 사령부의 심각한 결함을 보여준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드론과 매복 군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병참 지원이나 보병 부대의 호위없이 탱크를 전진시킴으로써 탱크 부대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공중에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러시아 조종사들이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성과가 기대이하 였고” 그 결과 우월한 공군력을 사용해 지상전에서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 러시아군은 통신 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결과 위성 신호에 대한 적의 접근을 막는데 실패했다. 4월과 5월 5주간의 포위 기간 동안 마리우폴의 Azovstal 철강 공장을 방어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 정보국과 전자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이 전투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영국에 있는 트레이너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우크라이나 군인의 이야기는 러시아의 무능함과 비효율성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트럭 타이어에 공기를 적절하게 주입하는 것과 같은 작지만 중요한 임무를 소홀히 하는 러시아군의 전반적인 부실함은 러시아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신임 러시아 장교와 병사들이 그들이 교대한 이전 병사들보다 더 잘 준비되고, 더 나은 장비를 갖추거나, 전투를 더 잘 수행할 것 같지는 않다. 핵 위협은 쉽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러시아가 “핵 무기를 사용” 한다면 남은 동맹국을 잃고, 풍향을 잘못 측정하여 낙진이 러시아 영토로 떨어질 수 있으며, (핵무기가 없어도) 전쟁 수행이 가능한 나토 동맹국과 직접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군 자산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전술 및 중거리 핵탄두는 많은 러시아 무기와 마찬가지로 구소련 연방이 남긴 것들이다. 그 핵탄두들은 수십 년 동안 여러 저장소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었다. 이러한 오래된 탄두를 작동시키는 작업에는 많은 노력이 뒤따르고 인적 오류의 위험도 수반된다. 알려진 핵 탄두 비축 장소를 고려할 때, 서방 정보 당국에서이러한 탄두를 다루고 발사할 수 있는 부대의 수 그리고 관련된 분쟁 지역까지의 이동 거리 등을 탐지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적인 주제는 “푸틴과 그의 군대가 하기를 원하는 것” 과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야망이 있다고 해서 능력이 자동적으로 따라 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소생한 우크라이나 군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군은 벅찬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2006년 야심찬 군 개혁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으나 정치 불안정, 부패, 인플레이션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자원 부족으로 인해 군 개혁은 실패했다. 하향식으로 이루어진 군 개편도 제대로 고안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제도 및 자금상 제약을 극복하고 최첨단 기술과 고급 지휘 및 통제 체계를 갖춘 전문적인 군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4년 크림반도와 돈바스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 당국으로 하여금 군 개혁에 대한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군(AFU)을 신속하게 변화시키도록 만들었다.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2014~2019)치하에서 해군과 방위산업 개혁은 군 내분과 횡령 사건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4,000명의 병력을 보유한 자율적인 특수 부대 사령부를 창설하는 데 성공했다. 2014년 사건들은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선 많은 수의 군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3년에 폐지된 징병제가 2014년에 다시 도입되었다. 보다 혁신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은 지역 사회에 기반한 군대가 되었다. 재정적으로 궁핍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민 사회,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우크라이나 교포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 자금 지원과 군 입대를 호소했다. 우크라이나군에게 가능한 한 빨리 장비, 제복, 보호 및 개선책, 그리고 “절실히 필요한 군사 장비”를 공급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이 생겨났다. 이들의 기부금은 2015년 우크라이나 국방 예산의 4%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인력 부족 문제를 다소 해소했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로 시민 지원군이 창설되었다. 2014년까지 이미 10,0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지원 부대가 창설되었다. 시민 지원군에 대해서 일부 규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자들과의 전투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었고, 앞으로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영국은 물론이고 (놀랍게도) 독일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을 전장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중요한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2022년 10월 중순 현재, 미국은 2021년 우크라이나의 전체 국방예산보다 11배 이상 많은 약 66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엄청나게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는 M142 HIMARS 이동식 정밀 다연장 로켓 발사기, 영국 및 미국산 M777 155mm 곡사포, 다양한 유형의 드론 등 세련된 무기들이 포함되었다. 2015년부터 2022년 2월까지 영국군은 “Orbital” 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22,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신병을 훈련시켰다. 2022년 9월 현재,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스웨덴에서 온 교관들이 영국군과 합류해 영국 캠프에서 수천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에게 단기 속성 군사 훈련을 시켰다. “Orbital” 작전 프로그램은 하급 장교, 부사관 및 일반 사병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멀리 떨어진 지휘 본부에 있는 지휘관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최전방에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가르친다. 우크라이나군은 푸틴의 군대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작은 나라 우크라이나는 최근 군 개혁과 대규모 서방 원조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우위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시민 지원군과 정규군 모두 추진력, 용기 및 자원에서 우수성이 발휘되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계시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명확한 사고를 가진,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 우크라이나인들을 이끌고 온 것은 행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과 같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오랫동안 부인했던) 우크라이나의 민족성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고,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더 크지만 너무 쉽게 잊혀진 진실을 알게 하였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반대는 또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토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의 등 뒤에서 단결한다면 다윗인 우크라이나는 골리앗인 러시아에 맞서 아주 좋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First published in :

Journal of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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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ltan Barany

Zoltan Barany 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이다. 전공 분야는 군부정치와 사회학, 글로벌 민주화이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1993년 동유럽의 군인과 정치,' '2016년 어떻게 군대는 혁명에 반응하며 왜,' '2021년 아라비아의 군대: 걸프지역의 군부정치와 효과'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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