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 to our weekly newsletters for free

Subscribe to an email

If you want to subscribe to World & New World Newsletter, please enter
your e-mail

Defense & Security

모잠비크: 학살은 언제 끝날까?

모잠비크 마푸토 - 2024년 5월 18일: 모잠비크 국기를 입은 남자가 시위 도중 확성기로 군중에게 연설하고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대의를 지지하는 배너를 들고 있습니다.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Michel Cahen

First Published in: Mar.18,2025

Mar.31, 2025

1975년 6월 25일 독립 이후, 모잠비크해방전선(Frelimo)은 모잠비크를 50년 동안 사적으로 이용했다.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허가받은 정당이었던 모잠비크해방전선은 (1975년부터 1992년 다당제가 도입될 때까지) 이후, 1994년 유엔이 조직한 최초의 총선거를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체계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2024년 10월 마지막 총선거 이후, 이러한 사기행각은 일반 대중의 반란을 불러일으켰다. 당국은 시위대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고, 이러한 탄압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주목할 만한 반응이 없다.

 

2024년 10월 9일, 모잠비크는 1992년 다당제가 도입된 이래 일곱 번째 총선거(지방선거, 의회선거, 대통령선거)를 치렀다. 공식 선거 결과는 모잠비크해방전선의 대통령 후보인 다니엘 차포를 포함한 모잠비크 해방 전선 후보에게 명확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차포는 7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나중에 65%로 감소). 국제 및 독립 기관 관찰자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모잠비크에서 치러진 최악의 부정 선거였다. 많은 국민은 20%의 득표율(당시 24%)을 기록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야당 후보인 베난시오 몬들라네가 선거에서 이겼다고 확신한다.

 

물론, 1975년 이래 계속해서 집권한 모잠비크해방전선이 사기 행각을 통해, 그리고 1당제 시절(1975-1992년)처럼 정당과 국가의 완전한 융합을 통해, 후견주의(사람들은 모잠비크해방전선 카드가 없거나 다른 정당의 카드가 있는 것보다 모잠비크해방전선 카드가 있는 것이 훨씬 더 잘 산다!)를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마지막으로 반대하는 정적들을 암살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거 사기로 인해 범국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50년간의 권위주의적 가부장주의

 

1975년 모잠비크는 독립을 얻었고, 포르투갈 식민 통치에 맞선 투쟁에서 정통성을 얻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성향”의 모잠비크해방전선이 집권했다.

 

그 후 모잠비크해방전선과 모잠비크 국민저항(Mozambique National Resistance: Renamo) 사이에 긴 내전(1977-1992)이 이어졌고, 이 내전은 오랜 기간 동안 모잠비크의 정치적 삶을 지배했다. 이들 간 갈등은 정부의 권위주의적이고 반농민적 현대화 정책에서 비롯되었지만, 모잠비크 국민저항 게릴라 운동은 이웃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지원을 받았다. 양측 모두에서 폭력이 난무했다. 내전 종식 후, 특히 도시(특히 남부)에서 불만이 많은 사람들조차도 담론에서 “무장한 산적”의 정당으로 여겨지는 모잠비크 국민저항에 투표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심 지역에서 중산층 유권자들은 모잠비크 국민저항에서 분열되어 나온 제3의 정당인 모잠비크 민주 운동(MDM)에 투표하기 시작했고, 투표용지를 집계하는 동안 정전이 되지 않았다면 수도 마푸투에서 모잠비크 민주 운동은 2013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두 주자는 당시 인기 있는 TV 및 라디오 해설가였던 베나시오 몬들라네이었다. 내전 상황에서 치러진 2014년 의회 선거에 모잠비크 국민저항은 2009년 투표에 비해 득표 수(16%에서 36.61%)와 의원 수(250명 중 49명에서 89명)를 두 배로 늘렸다. 하지만 2018년(지방선거)과 2019년(총선, 득표율 21.48%, 대원 60명) 선거에서 모잠비크 국민저항의 상승세는 국가 기구의 기계에 의해 산산이 조각났다.

 

이 사기 행각은 선거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선거 유권자 조사에서 집권당 지지 지역인 가자 지방의 주민보다 훨씬 많은 유권자가 집계되었지만 야당지지 지역에서는 유권자가 훨씬 적게 집계되었다. 이외에 유권자에 대한 체계적인 위협(유권자 카드 번호를 수집하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모잠비크해방전선이 아닌 정당의 감시자들은 거의 공인을 받지 못했지만, 모잠비크해방전선의 감시자들은 수천 명씩 투표소로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거에서 모잠비크 국민저항이 주요 남부 도시이자 역사적인 모잠비크해방전선의 거점인 마푸투와 마톨라에서 실제로 선거에서 이겼다는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모잠비크 국민저항은 자발적인 청년 행진을 개시했지만 정식 시위를 조직하지 않았고, 모잠비크해방전선이 완전히 통제하는 기관에 대한 호소만을 했을 뿐이었다.

 

베나시오 몬들라네 현상과 모잠비크 사회의 반란

 

세월이 흐르고 한 세대가 지나면서 남부 도시에서도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이 더 이상 모잠비크 국민저항에게 투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전의 기억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구조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잠비크 국민저항은 2018년 역사적 지도자 아폰소 달라카마가 사망하고, 새 지도자로 게릴라 장군 출신 오수포 모마드가 임명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다. 모마드는 주도권과 리더십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마드는 베나시오 몬들라네가 2024년 10월 대선에서 모잠비크 국민저항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막았지만, 몬들라네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새로운 유형의 제3의 후보로, 한 시민으로, 그리고 도시에서 교육받은 사람으로, 그리고 복음주의자(나라에서 떠오르는 종교 세력)로 출마를 결행했다. 모잠비크 국민저항과 모잠비크 민주 운동 유권자들은 이 새로운 후보로 대거 지지를 바꾸었는데, 이들 유권자들은 무엇보다도 모잠비크해방전선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보를 바꾸었다.

 

베나시오 몬들라네는 그를 지원하는 노련한 정당은 없었지만, 모잠비크 국민저항의 캠페인보다 그의 캠페인이 훨씬 더 잘 조직되었다. 그는 컴퓨터 장비 등을 사용하여 체계적인 투표 집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집계가 완료되자마자 수천 명의 투표지를 수집했다. 이를 통해 그는 70%의 득표율로 선거에서 이겼다고 주장할 수 있었지만, 정부 공식 결과는 약 20%에 불과했다.

 

확실한 것은 사기 행각이 셀 수 없이 많았고 편향된 선거 결과에 대한 대중들의 확신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베나시오 몬들라네는 즉시 “승리 퍼레이드”를 요구했지만, 당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당국은 사실상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집권당 후보 다니엘 차포의 승리를 주장했다.

 

정국의 전환점은 2024년 10월 19일에 찾아 왔다. 베나시오 몬들라네의 캠페인 리더인 엘비노 디아스와 파울로 과암베가 거리와 차 안에서 살해당했을 때였다. 현지에서는 “죽음의 분대”로 알려진 신속 개입 부대(UIR, 군사 경찰)의 특수 작전 구성원에 의해 이들이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이것은 총파업을 요구한 베나시오 몬들라네에 대한 당국의 경고였다.

 

그 이후 상황은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자주 발생하듯이 선거 사기에 대한 시위가 발생했고 이 시위는 혁명으로 바뀌었다.

 

매우 가난한 사람들,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청년들, 거리에서 기도를 조직하는 젊은 소녀들이 대거 침가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관찰되었고, 때때로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발생되었다. “시멘트 지구”의 중산층도 뒤지지 않았다. 이들은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창문에서 몇 시간 동안 “카세롤라데스”(시위 중에 냄비를 두드리는 것)를 했다.

 

시위의 중요한 특징으로 인종적 차원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내전은 결코 인종 간 전쟁이 아니었지만, 모잠비크해방전선은 남부와 도시의 당이었고 모잠비크 국민저항은 북부와 시골의 당이었다. 베나시오 몬들라네가 남부 출신이라는 사실은 지하디스트 게릴라 전쟁의 영향을 이미 받은 북부를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당국은 시위대가 상점을 약탈했다고 비난했지만, 경찰도 약탈하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여러 차례 실제 총격이 가해졌다. 선거 결과 공식 발표와 마지막 항소의 기각 발표, 그리고 2025년 1월 15일 다니엘 차포 대통령의 공식 취임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약화되지 않았다.

 

이제 자신을 “투자 대통령”이 아니라 “인민의 대통령이자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여긴 베나시오 몬들라네는 전국 순회를 시작했고, 모잠비크해방전선에 가장 충성하는 지역에서도 많은 군중이 그의 순회 연설에 모였다. 혁명 과정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기 행각에 반대하는 시위가 아니라 높은 생활비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몬들라네는 시멘트와 기타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안”을 발표했고, 사람들은 이를 시행하라고 시위에 나섰다.

 

지역 사회는 당국의 명령에 따라 모잠비크에 설립된 다국적 기업에 반기를 들었다. 엄청난 압력 하에 수락된 ”계약“에서 언급된 잃어버린 땅과 집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아티즈 노천 탄광의 오염에 대한 항의 시위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오일샌드 개발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벌채한 신성한 숲의 파괴는 더 이상 용서받지 못했다. 대체로 모잠비크해방전선 지지 전체가 이러한 도전을 받았고 혁명은 단순히 민주적인 혁명에서 사회적인 성격의 혁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미 치른 대가는 엄청났다. 어린이 또는 어린 소년, 또는 단순한 지나가는 사람을 포함하여 353명이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베나시오 몬들라네 지지 지역 간부들 중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당시 시위가 없었던 마싱가(인함바네 주)에서 2025년 3월 8일 밤, 매복에 걸려 차 안에서 살해된 이 두 청년도 그들 중 일부였다. 마싱가는 지난 며칠 동안 남부 지역에서 정부에 대한 반대 세력의 온상이 되었다. 수천 명이 부상당했고(숫자는 3,000명으로 추산되지만 이 수치는 주로 대도시의 부상자에 대한 것이다), 수천 명이 체포되었고, 많은 사람이 실종되었다(언론인 포함)...

침묵하라, 우리는 죽인다

 

이러한 혁명 과정은 야당의 개입 없이 진행되었는데, 야당은 자당의 의원을 의회에 파견하기로 동의했고, 몬들라네는 의회 보이콧을 요구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발전은 남풀라와 잠베지아 지방에서 나파라마스가 재동원된 것이다.

 

나파라마스는 모잠비크의 독특한 역사적 현상으로, 활과 화살로 무장한 마법의 농민 민병대(총알에 대한 백신 접종)를 말한다. 내전이 끝나고 지친 사회에서 그들은 주로 모잠비크 국민저항에 대항하여 모잠비크해방전선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는 무장 경찰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무장한 경찰에 의해 가혹하게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당국은 모든 정치 세력과 화해 협정을 체결했다... 몬들라네를 제외하고. 협정이 체결된 바로 그날인 2025년 3월 5일, 몬들라네가 참석한 마푸투의 시위는 신속 개입 부대의 실탄 공격을 받아 4명이 사망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동시에 공식 대통령은 수사(修辭)를 강화했다. 2025년 2월 24일 펨바(북부)에서 데통령 취임 후 첫 공개 회의에서 그는 “시위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면 우리는 피를 흘릴 것이다. 우리는 테러와 싸우고, 나파라마스와 싸우고, 시위와 싸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며 공권력에 대한 모든 형태의 도전을 2017년 이후 북부에서 만연해 온 지하드주의와 동일시했다.

 

50년 동안 모잠비크해방전선과 완전히 융합되어 온 국가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권위주의 당에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우리는 피를 흘릴 것이다” 라고 말할 때, 그는 억압 세력의 중간 및 지역 계층에게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명령을 들었다. 권력은 진행 중인 사회적 혁명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의 잔치를 벌일 준비가 되었다. 누가 그것을 막을 것인가? 국제 사회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마푸토에 있는 외국 대사관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First published in :

The Conversation

바로가기
저자이미지

Michel Cahen

Michel Cahen는 CNRS Les Afriques dans le Monde 연구 센터, Sciences Po Bordeaux의 연구 명예 이사이다.

Thanks for Reading the Journal

Unlock articles by signing up or logging in.

Become a member for unrestricted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