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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plomacy

조지아의 서구로부터 조용한 철수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는 시위대 사이에서 한 사람이 조지아 국기를 들고 있다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Eerik-Niiles Kross

First Published in: Oct.14,2022

Apr.10, 2023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생한 여러 사건 중 어떤 단일 사건이 러시아가 민주적 발전의 길에서 결정적으로 이탈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조지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에스토니아, 유럽연합, 미국, 조지아의 모든 서방 친구들이 조지아를 민주주의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가 무기력해 조지아에서 민주적 발전의 길에서의 이탈이 일어났다.

 

많은 관찰자들은 전환점이 2021년 7월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2012년부터 집권당이었고 비즈니스맨인 비지나 이바니시빌리(Bidzina Ivanishvili)에 의해 통제되던 정당인 Georgian Dream (조지아 꿈)이 조지아의 정치 조직과 조지아 통치의 미래 발전에 관한 야당과의 협정, 즉 ‘조지아 꿈’ 당과 야당간 2021년 4월 19일에 서명되었던 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 협정은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샤를 미셸 유럽 이사회 의장으로  대표되는 유럽연합과 조지아 주재 미국 대사가 중재했다. 이 협정은 야당의 의회 보이콧 종식(야당은 2020년 10월 총선 이후 의회 활동을 보이콧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선거가 부정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통합 국민운동 의장인 니카 밀리아 같은 중요한 정치범의 석방, 의회에서 야당의 역할 강화, 사법 개혁, 선거 때까지 대법원 판사 임명 일시 중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분적) 탈정치화를 포함한 선거 개혁을 위한 토대를 제공했다.

 

야당의 일부는 이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은 이 협정을 조지아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로 간주했다. 샤를 미셸은 협정 조인식에서 "이 협정은 조지아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조지아의 유로-대서양 미래를 향한 조지아 정당의 작업을 위한 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조지아의 '야누코비치 순간’

2021년 7월 28일, ‘조지아 꿈’ 당은 현 상황에 대해 야당을 비난하면서 일방적으로 이 협정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앞서 조지아 정부는 4·19 합의를 위반하고 대법원에 여러 명의 대법관을 임명해 유럽연합과 주미대사관의 불만을 샀다.

 

많은 정치인들은 이 협정의 무효화를 조지아의 "야누코비치 순간" 으로 보았는데, 이는 친러시아 정책을 추구하기로 선택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前)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 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한 것과 같은 전환점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두 사건의 유사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지아의 서방 사회로의 진로가 불투명해지고 조지아 성공 스토리의 쇠퇴는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 실제 2021년 7월까지 유럽과 조지아 정부 간의 관계는 수년 동안 악화되었다. 유럽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지금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지아의 큰 문제의 시작은 2011년 선거에서 이바니시빌리 총리가 집권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바니시빌리의 집권은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과 분쟁 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서방이 선택한 과정과 직접 관련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2008년 8월 러시아와 조지아 간의 휴전협정은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가 중재했다. 러시아는8월 8일 이전의 주둔지로 모든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지역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허용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며, 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안보와 안정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개시하기로 약속한 6개 항목의 평화 계획에 서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군대를 일상적인 구역으로 복귀시키겠다는 약속은 조지아만이 지켰고, 몇 주 후 러시아는 조지아의 영토였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해할 만하게도, 서구의 주된 관심사는 분쟁을 진정시키고 또 "확산" 시키는 것이었다. 심지어 사르코지 휴전 협정도 공식 유럽연합 문서를 살펴보면 분쟁을 확산시키기 위한 계획으로 불리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조지아의 민주주의 확산이 시작되었다.

 

조지아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목적은 국내 정책만큼이나 안보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즉, 서방으로 향하는 조지아의 진로를 바꾸고, 나토 가입에 대한 조지아의 열망을 끝내며, 러시아의 이익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조지아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강대국 대다수의 의견으로는 조지아가 러시아와 새로운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서방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 같았다. 미하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 2004~2013년 조지아 대통령) 정부는 나토 가입으로 향한 조지아의 진로를 바꾸거나 조지아의 주권 문제에 대해 러시아와 타협할 의사가 없었다. 그 결과 사카슈빌리가 서방 평화 운동가와 블라디미르 푸틴 모두에게 방해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서방의 무기력한 반응이 푸틴으로 하여금 이후 공세 조치를 취하도록 부추겼다는 점을 인정했다. 조지아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훨씬 더 나약한 서방의 반응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2008년 여름 공격적인 발언, 2008년 봄 뮌헨과 부쿠레슈티에서 푸틴의 위협("우리는 코소보를 해줄게"), 군대 증강 등 러시아에 의한 긴장 고조가 서방 정보 기관의 눈에 확 띄었다. 그러나 2008년 여름 조지아가 거듭 경고했지만 서방의 주요 관심사는 현 상황과 사카슈빌리를 진정시키고 러시아인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 그래서 러시아인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러시아 유화 정책의 한 예는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전쟁당사자의 책임을 평가해야 하는 유럽 연합의 위임을 받은 소위 Tagliavini 보고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양측 모두 전쟁에 책임이 있으며 조지아는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고 러시아는 "과잉 반응"했다고 밝혔다. Tagliavini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 배경에는 브뤼셀이 조지아 정부에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즉, “이 보고서의 내용에 불만이 있어도 참아라, 우리는 푸틴을 화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조지아 당신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대신 조지아는 우리로부터 40억 달러의 원조를 받게 되고, 우리는 계속 친구가 될 것이다.”

 

서구의 실수

2009년 3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미-러 관계의 '리셋 정책'을 발표했다. 즉, 주권 국가에 대한 침략 행위가 있은 지 7개월 후, 침략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침략의 희생자에게 오히려 전쟁 책임의 일부를 물은 미국은 모스크바에 모든 것이 잊혀졌거나 적어도 잊을 수 있으며 그리고 용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전후 회담에서 러시아-조지아 사이의 분쟁이 논의되었고, 최종 성명서에는 양국간 유일한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조지아 문제라는 점이 포함되었다. 조지아는 미-러 관계에 관한 리셋 정책이 작은 나라의 안보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최종 성명서에 대해 만족했다.

 

이바니시빌리 총리가 조지아에서 권력을 잡은 것은 적어도 문맥상으로는 푸틴의 체면을 세워주고 미-러 관계에 관한 리셋 정책과 일치된다. 2011년에 러시아의 평판 메이커 그리고 아마도 미국의 평판 메이커도 사카슈빌리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퍼뜨렸으며,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사카슈빌리의 공격성에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래서 "미치광이“ 로 불린 사카슈빌리가 선거에서 졌을 때,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시 에스토니아 국방부 장관이었던 우르마스 라인살루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바니시빌리와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에 관한 글을 소개하자 미국과 에스토니아 외무부는 분노했다.

 

서방이라는 궤도에서 멀어짐

2011년 선거에서 사카슈빌리 정부가 패배한 이후 조지아는 두 기간 동안 과두제 정당 정부 스타일로 통치되었다. 2018년 대선 즈음까지 지속된 첫 번째 기간 그리고 조 바이든이 2020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까지 어떤 수준에서는 조지아의 꿈 정당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친서방적이었고, 나토와 유럽연합을 향한 진로를 유지했으며, 대조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차가웠다. 동시에 유럽연합에서는 특별한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에서는 환영받았을 몇 가지 중요한 조치가 ‘조지아의 꿈’ 당(黨)에 의해 취해졌다.

 

이미 2012년에 사카슈빌리 시대 정치인에 대한 조직적인 괴롭힘, 투옥, 추방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서방 국가들은 그것이 어느 정도는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러시아 요원들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러시아와의 비자 자유가 회복되었고 그것도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현재도 시행 중인 제도인데 러시아 여권을 소지한 모든 사람은 1년 동안 비자 없이 조지아에 갈 수 있었다.

 

선거 때마다 여당의 선거 운동에서 납세자의 돈이 사용되는 것은 더욱 흔한일이 되었다. 본질적으로 조지아 유권자에게는 2011년 이후 자유 선거를 위한 실질적인 기회가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자유 선거가 가능하지만, 편향된 미디어, 당국의 대규모 선거 지원, 때로는 야당에 대한 물리적 괴롭힘으로 인해 사실상 자유 선거가 불가능하다. 

 

주권 국가에 대한 침략 행위가 있은 지 7개월 후, 침략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침략의 희생자에게 전쟁 책임의 일부를 물은 미국은 모스크바에 모든 것이 잊혀졌거나 적어도 잊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바니시빌리의 일족은 또한 조지아 경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거의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카슈빌리 정권하에서도 정부는 자신이 선호하는 편이 있었고 그들이 밀려 났을 때 대부분의 유권자는 별로 반대를 하지 않았다. 조지아가 서방 국가 궤도에서 조용히 거리를 두는 것은 2014년에 보다 명확해졌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에서의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조지아 정부의 반응은 극도로 유보적이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사이에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고, 조지아의 오랜 친구인 동유럽은 모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15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이바니시빌리 조지아 총리와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첫 통화가 이뤄졌고 이바니시빌리 총리는 우크라이나 정부 고문으로 일하고 있던 사카슈빌리를 조지아로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본질적으로 2014년부터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함께 나토에 가입하려고 시도했고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담의 최종 문서에서 언급된 이 두 나라는 그 이후 공식적으로 다소 다른 진영에 있었다. 동시에 많은 사카슈빌리 시대 조지아 관리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취직하여 법 집행, 반부패 및 사법 개혁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2014년 이후 조지아 자원부대 전체가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으며 올해 2월 조지아 군단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 국제 군단이 창설되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이후 조지아 정부는 조지아 자원부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막았다.

 

회색 추기경 역의 이바니시빌리

2011년 정권교체 이후 조지아에 만연했던 내부 정치 상황은 늦어도 2021년 초에 바뀌었다. 아마도 역사가들은 언젠가 정확히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일으켰는지 알아낼 것이다. 아마도 대내외 정책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정치 상황이 점점 더 긴장되고 있고, 야당은 점점 더 비판적이 되고 있다. 야당은 2021년 10월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후 일부 야당은 의회 보이콧을 벌이고 있다.

 

유럽은 조지아에서 개혁이 중단되는 것에 점점 더 불만을 품고 있었고, 조지아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손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동시에 조 바이든의 당선 이후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주변 국가의 잠재적 전쟁 반대자들을 중립화하기 시작했다.

 

2021년은 이바니시빌리의 정계 은퇴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공식적으로 그는 2021년 이후 어떠한 정치적 자리도 맡지 않았지만 조지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가 계속해서 국가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조지아 민주주의의 쇠퇴

2021년 2월 기오르기 가하리아(Giorgi Gakharia) 총리가 사임하면서 조지아에서 새롭고 훨씬 더 공격적인 시기가 시작되었다. 조지아 꿈을 떠나 자신의 정당을 결성한 Gakharia 가하리아는 표면적으로는 야당 지도자이자 연합국민운동(United National Movement)의 의장인 니카 멜리아를 투옥하기로 한 ‘조지아 꿈’ 정부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공식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이바니시빌리는 가하리아를 그의 오랜 동맹이자 자신감있는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로 교체했다. 가리바슈빌리는 2013-2015년에 총리였지만 조지아와 서방 국가에서 너무나 인기가 없어 사임한 바 있다.

 

멜리아는 감옥에 보내졌다. 2021년 5월, 야당 성향을 가진 Mtavari TV 의 주요 소유자이자 대표인 Nika Gvaramia 도 투옥되었다. 이 TV 채널의 설립자이자 야당 정치인인 Giorgi Rurua는 이미 감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후 조지아에서 민주주의의 쇠퇴는 더 빨라졌다. 정부는 사법부와 헌법상 독립이 보장된 기관(예: 국가 옴부즈맨 및 선거 위원회)을 통제하고, 대통령 비밀요원은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을 도청하며 언론에 선택적으로 테이프를 제시하고 있고, 정부는 시민 사회를 괴롭히고 있다.

 

조지아는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미국이 조지아를 러시아와의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비난했다.

 

조지아와 유럽연합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2021년 4월 19일에 서명되었던 소위 미셸 협정의 철회로 관계 악화는 절정에 달했다. 조지아 정부는 또한 유럽과 미국의 조지아에 대한 절제된 비판도 공개적이고 공격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유럽 연합이 2021년 7월 이후 조지아가  사법 개혁을 위해 필요한 대출을 받을 자격이 더 이상 없다고 발표했을 때 조지아 총리는 조지아가 대출을 거부할 것이며 유럽인들의 비판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2021년 9월 한 언론인이 조지아 정부에 대한 유럽 연합의 비판에 대해 조지아 국방부 장관을 인터뷰했을 때 ”유럽 연합이 정확히 누구인가?" 라며 이 장관은 불만을 드러냈다. 2021년 여름 조지아 대통령 비밀요원은 비밀리에 서구 외교관들을 도청했는데, 조지아 정부 대표는 이러한 도청에 대한 서구의 분노에 대해 "비엔나 협약의 경계를 넘어선 것" 이라고 비난했다.

 

미래는 우크라이나에서 결정될 것이다

2022년 2월 24일 이후 상황이 더 나빠졌다. 조지아는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으며 미국이 조지아를 러시아와의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대사와 조지아 정부 대표 및 국회의원 사이에는 거의 지속적이고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말이 교환되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때 러시아는 조지아 농산물에 대한 여러 가지 제재를 해제했다. 러시아와 조지아 간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조지아 상품이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고, 조지아 항구에서는 러시아 상품에 대한 서비스를 잘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소유한 6000개 이상의 회사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조지아에 등록되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국회의원들은 조지아가 러시아의 국제제재를 회피하도록 도왔다고 비난했다. 지난 6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보좌관은 미국 의회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 정책을 위반한 이바니시빌리 전(前) 조지아 총리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한 제재 정책으로 인해 조지아 정부는 아마도 조지아 유권자들 사이에서 (이미 낮은) 지지를 상당히 많이 잃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반대중의 지지는 조지아인들 사이에서 대체로 높고 올해 조지아에서 개최된 가장 큰 시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유럽연합은 지난 6월 정상회담에서 조지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게 유럽연합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첫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러한 유럽연합 결정에 대해 조지아 정부는 유럽에 대해 비판을 가했는데 이런 비판을 아마도 조지아 사람들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지아 국민의 절대 다수는 여전히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조지아의 운명은 이제 조지아 정부, 유권자 또는 유럽 연합의 손보다 우크라이나군(軍)의 손에 달려 있다. 조지아의 유럽 연합 후보 지위를 다시 의제에 올려놓기 위해 성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12개 항목의 메모를 유럽 연합이 제시했지만 조지아의 향후 노정은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성패에 따라 더 많이 결정될 것이다. 러시아가 이기면 조지아 여당인 조지아의 꿈 정당도 승자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자유를 되찾는다면, 이후의 과정의 전개는 잘못된 편을 택한 조지아의 꿈 정당도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러시아가 2008년 크렘린에서 설정한 전쟁 목표를 조지아에서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First published in :

ICDS Diplomaatia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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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rik-Niiles K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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