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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plomacy

에르도안의 터키 외교 정책: 교리 없는 전략

2022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 G20 회의에 참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M. Hakan Yavuz

First Published in: Mar.15,2025

Apr.14, 2025

2002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집권한 이래 터키 외교 정책에 관하여 우리가 에르도안의 교리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답은 ‘아니요’이다. 일관된 이념적 또는 전략적 틀을 따르는 고전적인 교리와 는 달리, 에르도안의 국내 및 국제 정치에 대한 접근 방식은 실용주의적 기회주의, 거래주의적 조작, 전술적 적응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외교 정책은 원칙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 권력 통합, 경제적 자기 보존을 위해 설계된 유동적이고 재조정된 전략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적응성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오스만 제국에 대한 향수, 터키 민족주의를 원동력으로 계속 활용하면서 터키의 국내 상황과 터키의 글로벌 입지를 관리했다. 이러한 그의 이념은 교리적 토대가 아니라 전략적 도구로 사용되며, 국가 권력을 통합하고 점점 더 개입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외교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채택된다. 그의 외교 정책은 에르도안 독트린이 아니라 역동적인 정치 전략의 하나로, 지역 및 글로벌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이념적 수사(修辭)와 현실정치적 실용주의의 균형을 추구한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궤적은 극단적인 기회주의로 특징지어졌다. 임기 초기 그는 자신을 친서방 민주주의자로 내세워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이뤄내고 경제 자유화를 옹호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권력 장악력이 강화되면서 그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으로 전환하여 서구 기관을 불신하고 반(反)서방적, 신(新)오스만주의적 담론을 수용했다. 전략적 이익을 위해 이념적 입장을 조정하는 그의 능력은 에르도안의 교리가 일관된 원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념적 유연성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거래적 성격은 그의 외교 정책으로 확대되는데, 한 예로 에르도안은 성격이 상반되는 글로벌 동맹에 참여했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와 더욱 강력한 관계를 추구하고, 시리아에서 이란과 맞서면서 이란과 관계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으며, 유럽연합과의 경제적 관계를 활용하면서도 서방의 제국주의를 비난했다. 2016년 쿠데타 시도가 실패하면서 에르도안의 수사(修辭)는 반(反)서방적이 되어 자신의 외교 정책을 국내 정치 투쟁의 연장선으로 만들었다.

 

에르도안 전략의 결정적인 특징 중 하나는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의 전통적 경계를 없애는 것이다. 에르도안의 외교 정책 결정은 장기적인 전략적 고려 보다는 주로 국내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이루어진다. 시리아와 리비아에서의 군사 작전은 민족주의적 승리로 규정되어 에르도안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 경제 위기로부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는 데 기여했다. 정치적 라이벌과 반체제 인사들은 일상적으로 서방의 꼭두각시이거나 외국의 음모와 관련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이러한 비난과 지적은 반(反)서방 민족주의를 강화한다. 에르도안은 유럽에 거주하는 터키 디아스포라를 정치적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을 해외 ​​무슬림의 보호자로 묘사하고 터키를 세계 이슬람 운동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국가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구분하지 않는 이러한 불명확한 경계선은 모든 외교 정책이 정권 정통성 유지를 위해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터키의 군사 개입, 외교 위기, 경제 정책은 모두 서방의 패권에 저항하는 리더라는 에르도안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기 위해 포장된다.

 

에르도안은 국내의 부패, 억압, 경제 침체를 속이기 위해 이슬람주의 수사(修辭)법과 오스만 제국의 향수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이슬람주의 활용은 이념적이라기보다는 매우 실용적이다. 에르도안은 한때 친기업, 온건한 이슬람주의 입장을 표명했지만, 보수 유권자들을 규합하기 위해 점점 더 급진적인 이슬람 단체와 손을 잡았다. 신(新)오스만주의적 수사(修辭)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터키를 중동 지역 리더십의 합법적 상속자로 묘사했다. 터키의 종교 사무국(Diyanet)은 에르도안의 이념적 도구가 되어 그의 통치를 신이 허락한 것으로 규정하고 터키에 대한 세속적이고 서구적인 영향을 공격했다.

 

에르도안의 경제 정책은 외교 정책과 동일한 거래적 성격을 반영한다. 그는 서방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시장 정책과 국가 주도의 재벌 자본주의 사이를 오가며 움직였다. 그러나 외교 정책의 군사화는 심각한 경제적 취약성을 만들어냈다. 에르도안이 러시아 S-400 미사일을 구매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의 제재를 불러왔고 미국의 F-35 전투기 구매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야기했으며, 터키의 경제 침체를 악화시켰다. 공격적인 가스 탐사 노력은 터키를 유럽연합과 지역 행위자들로부터 고립시켰고, 이들과의 무역 관계를 악화시켰다. 에르도안이 카타르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사이, 최근의 걸프 왕정과의 화해는 터키를 지정학적으로, 경제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서방 시장과 자본에 대한 터키의 경제적 의존은 에르도안의 반(反)서방적 수사(修辭)와 모순되며, 그의 교리가 일관된 전략적 비전보다는 단기적인 정치적 생존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을 더욱 증명한다.

 

구조화된 지정학적 전략적 비전이라기보다는 에르도안 전략은 다음을 결합한 정치적 생존 메커니즘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 즉, 극단적인 실용주의와 거래주의, 필요에 따라 동맹과 이념적 입장의 변경, 국내 및 외교 정책의 융합, 외교가 국내 권력 투쟁의 연장선으로 추진, 이슬람주의와 오스만 제국에 대한 향수의 도구화, 권위주의와 경제적 쇠퇴를 속이는 것, 장기적 전략의 희생으로 단기적 ​​기회주의, 터키의 외교적 및 경제적 고립 증가.

 

에르도안의 통치는 터키의 미래에 대한 웅장한 비전보다는 그의 즉각적인 정치적 필요에 부합하는 임시방편적 결정, 모순, 대증요법적 정책으로 특징지어졌다. 이러한 거래적 기회주의는 에르도안 독트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는 이슬람, 민족주의적 리더십의 이미지를 투사하지만, 그의 외교 정책은 기회주의, 불안, 개인적 정치적 생존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그의 접근 방식의 결과는 터키를 경제 약화, 외교적 고립, 점점 더 권위주의적인 국가의 나락으로 떨어트려, 에르도안 모델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매우 불확실하게 만든다.

 

에르도안 전략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은 국내 및 외교 정책의 안보화이다. 에르도안이 2014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특히 2016년 7월 15일 군사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터키의 외교 정책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군사 안보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군사 안보화란 국내 및 외교적 과제를 비상 조치를 필요로 하는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에르도안의 접근 방식은 이슬람 이념, 오스만 제국 향수, 세브르 조약의 세 가지 주요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터키를 고위험 외교 정책 수행 국가로 몰고 갔고, 그 중 많은 것이 역효과를 냈으며, 전략적 고립, 경제적 불안정, 세계 무대에서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졌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전략은 터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영구적인 위협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배신과 포위의 역사적 서사(敍事)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가장 두드러지게는 아나톨리아를 분할하고 외국의 지배에 복종시키려는 세브르 조약(1920)으로 상징된다. 이 “세브르 증후군”은 공격적인 외교 정책, 군사 개입 및 권위주의적인 국내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에르도안은 터키 민족주의를 정치적 이슬람과 융합하여 터키를 오스만 제국의 상속자이자 수니파 무슬림의 수호자로 묘사했다. 이러한 결합은 특히 중동, 동지중해, 북아프리카에서 수정주의적 외교 정책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러한 야망은 종종 터키를 이전 동맹국 및 지역 강대국과 갈등을 낳았고, 결국 터키의 전략적 입지를 훼손했다.

 

안보화, 이슬람적 향수, 역사적 트라우마에 의해 형성된 에르도안의 외교 정책은 여러 분야에서 엄청나게 역효과를 냈다. 그는 터키를 강대국으로 재정의하려고 했지만, 그의 전략은 오히려 지역적 고립, 경제 불안정, 내부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민족주의적 서사(敍事)와 실용주의적 외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지 못한 터키는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져 터키는 서방의 회의주의, 러시아의 기회주의, 중동의 불안정성 사이에 끼어 있다. 에르도안이 자신의 접근 방식을 재조정하지 않는 한, 터키는 지역 및 글로벌 문제에서 더욱 고립되고 쇠퇴할 위험이 크다.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이 2002년에 집권한 이후, 터키의 외교 정책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으며, 서방의 유럽연합 중심 궤적에서 보다 단호하고 독립적이며 점점 더 반(反)서방적 입장으로 전환되었다. 처음에는 지역 문제 참여, 신(新)오스만주의적 수사법,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강조하는 “얇은 포퓰리즘”적 접근 방식을 채택했지만, 정의개발당의 외교 정책은 강력한 반(反)서구적 서사(敍事)가 지배하는 “두꺼운 포퓰리즘” 접근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2013년 게지 공원 시위 이후, 그리고 터키 정부가 서방이 지원하는 귈렌 운동의 탓으로 돌린 2016년 7월 15일 쿠데타 시도 실패 이후 더욱 명백해졌다. 서방 강대국의 안보화 확대와 터키의 이슬람 및 문명적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터키 외교 정책의 탈(脫)유럽화가 이루어졌다.

 

에르도안의 외교 정책에 대한 안보화는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여러 고(高)위험 사업에서 드러났다. 시리아에 대한 터키의 군사 개입(유프라테스 실드 작전, 올리브 가지, 평화의 봄)은 터키가 쿠르드 노동자당과 동일시하 는 쿠르드 민병대를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이슬람국가 ISIS에 대항하는 주요 동맹국으로서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해 온 미국과 심각한 긴장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시리아에서 터키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군사적 갈등이 커지는 외교적 교착 상태가 되었다. 칼리파 하프타르에 맞서 국민 합의 정부(GNA)를 지원하는 터키의 리비아 개입은 에르도안의 신(新)오스만적 야망의 연장선이었다. 터키는 에너지와 해상 이익을 일시적으로 확보했지만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프랑스, ​​그리스를 소외시켜 터키의 기동성을 제한하는 대항 동맹을 낳았다.

 

에르도안의 러시아 S-400 미사일 구매는 터키의 전략적 자율성을 위한 조치로 규정되었지만,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F-35 전투기 구매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터키의 독립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터키가 러시아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나토와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에르도안의 공격적인 자세는 터키와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손상시켜 경제적 손실, 외교적 영향력 상실, 유럽에서의 고립으로 이어졌다. 난민으로 유럽을 넘치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과 같은 에르도안의 대립적 접근 방식은 유럽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터키를 예측 불가능하고 거래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에르도안의 안보 중심의 외교 정책은 끔찍한 경제적 결과를 가져왔다. 터키 의 리라는 통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고, 외국인 투자는 감소했으며, 인플레이션은 급등했다. 처음에는 에르도안의 단호함을 지지하던 터키 국민은 경제적 어려움이 악화되면서 점점 더 그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다.

 

에르도안의 정책 안보화는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이득을 창출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략적 취약성을 낳았다. 아무도 터키를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의 민족주의-이슬람주의적 수사(修辭)는 특히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국내 지지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터키의 외교적, 경제적 고립을 심화시켰다.

 

마지막으로, 에르도안의 외교 정책은 반(反)서방적이었다. 에르도안의 반(反)서방적 외교 정책의 주요 동인은 정의개발당의 점진적인 포퓰리즘으로의 전환과 당내의 다른 저명한 인물들을 숙청함으로써 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 에르도안의 리더십 하에 정의개발당은 유럽연합 가입, 경제 자유화, 서방 동맹국과의 협력을 우선시하는 온건하고 개혁적인 담론을 채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퓰리즘적 경향이 지배적이 되었고, 에르도안은 점점 더 자신을 국내 및 국제 엘리트에 대항하는 터키 국민의 진정한 대표자로 묘사했다. 터키와 기타 다른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포퓰리즘적 외교 정책은 “덕이 있는 사람들”과 “부패한 엘리트”를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논리를 따른다. 터키의 맥락에서 이러한 이분법은 국제 무대로 확대되었고, 서방(유럽과 미국)은 부패한 엘리트의 온상으로 치부되어 터키의 글로벌 강대국으로서의 정당한 역할에 반대했다. 정의개발당에 의한 통치 초기 기간은 터키의 서구 지향과 지역주의적 비전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실용적인 접근 방식으로 특징지어졌다. 이 기간 동안 터키는 유럽연합, 나토, 미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한편, 아흐메트 다부토글루의 “전략적 심도” 교리에 따라 중동, 발칸 지역, 아프리카와의 관계도 확대했다. 이 시대 반(反)서구적 수사(修辭)는 제한적이었고, 터키의 지역적 활동주의는 서구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게지 공원 시위와 2016년 쿠데타 시도 이후, 에르도안의 수사(修辭)는 서구에 대해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서방 정부는 터키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테러리스트를 숨겨주고, 터키의 주권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리더십을 터키의 부상(浮上)을 막으려는 제국주의 서구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했다. 그가 2019년에 선언했듯이, “터키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터키의] 의제를 결정하지 않고 스스로 의제를 결정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터키의 외교 정책은 에르도안의 국내 포퓰리즘 투쟁의 연장선이 되었고, 반(反)서구주의는 이념적 도구이자 정치적 생존 전략으로 활용되었다.

 

터키의 반(反)서구로의 전환의 또 다른 주요 요인은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 담론의 융합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에르도안 외교 정책의 이념적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이념적 변화는 케말주의와 신(新)오스만주의와의 대조를 통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터키의 외교 정책은 서구화, 세속주의, 민족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터키의 건국 이념은 유럽과의 통합, 나토 가입, 냉전에서 미국과의 연합을 추구했다. 그러나 케말주의 엘리트는 또한 외국의 개입에 회의적이어서 신중하고 고립주의적인 외교를 추구했다. 신(新)오스만주의와 에르도안의 “새로운 터키” 비전은 반(反)서구적이고 이슬람주의적이며, 국가적 이익보다는 에르도안 정권의 생존을 위해 봉사한다. 에르도안 치하에서 수정주의적 역사적 서사(敍事)가 등장하여 오스만 제국을 서구 식민주의와 내부 배신에 의해 훼손된 위대한 문명으로 묘사했다. 이 비전에서 현대 터키는 오스만 제국 유산의 합법적 상속자이며 이슬람 세계에서 리더십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에르도안은 터키의 분할을 제안한 세브르 조약(1920)의 트라우마를 서구가 터키의 주권에 대해 계속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로 거듭 주장했다. 이러한 이념적 틀은 터키의 새로운 외교 정책의 정체성을 형성하여 터키를 서방의 종속된 구성원이 아닌 무슬림 세계의 리더로 자리 매김했다.

 

에르도안 정부가 더욱 권위주의적이고 이슬람주의화 되면서 유럽연합과의 관계는 꾸준히 악화되었다. 2016년 이후 야당 인사, 언론인, 학계에 대한 탄압으로 유럽 지도자들의 터키에 대한 비판이 커졌고, 유럽연합이 위선적이고 편향적이며 이슬람 혐오적이라는 에르도안의 주장이 강화되었다. 터키는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의 후보국으로 남아 있지만, 에르도안은 유럽 지도자들의 진심을 공개적으로 의심하며 유럽연합이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기독교 국가 클럽”이라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 개혁을 뒤집고 사법 기관, 미디어, 시민 사회의 독립성을 훼손했다. 그 결과 터키는 러시아, 중국, 걸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권위주의 모델에 더 가까워졌다.

 

에르도안의 반(反)서구적이고 비(非)유럽화된 외교 정책은 단순히 특정 외교 분쟁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포퓰리즘, 이념, 전략적 재조정에 뿌리를 둔 구조적 변화이다. 에르도안은 서구를 터키에 대한 주요 “가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지지 기반을 동원하며, 세계에서 터키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민족주의-이슬람주의 서사(敍事)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터키에 단기적인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했지만, 터키를 점점 더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취약하며 외교적으로 제약받게 만들었다. 이러한 에르도안의 외교 정책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며, 특히 국내 경제 문제와 변화하는 글로벌 역학이 터키의 지정학적 지형을 계속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의 외교 정책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는 국내 권위주의와 국제적 행동 간의 상호 작용이다. 안정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중진 국과는 달리 터키의 국내 정치적 역학, 특히 에르도안의 포퓰리즘 권위주의 통치는 터키의 특이하고 위험에 노출된 외교 정책 선택을 부추겼다. 에르도안은 외교 정책을 국내 정치적 생존을 위한 도구로 점점 더 많이 활용하면서 터키를 서방 제국주의와 싸우는 포위된 국가로 묘사했다. 야당은 종종 “외국 의 스파이” 또는 서방 강대국과 연합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이로 인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터키의 군사 작전 중 민족주의적 서사(敍事)가 증폭되어 시리아, 리비아,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개입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높아졌다.

First published in :

E-Internation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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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Hakan Yavuz

M. Hakan Yavuz는 유타대학교 공공정책학과 교수이다. 그는 "Erdogan: The Making of an Autocrat"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22) 및 "Nostalgia for the Empire: The Politics of Neo-Ottoman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20)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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