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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Security

논란이 많았던 사법 개혁안이 이스라엘에서 법으로 제정되면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굳건히 다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David Mednicoff

First Published in: Jul.24,2023

Sep.01, 2023

이스라엘 의회는 2023년 7월 24일 정부 조치를 제한하던 대법원의 능력을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행동의 일환이다.

 

이 법안은 몇 달 동안 이스라엘을 분열시키고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안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이 법안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 다수 유권자의 의지를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0년대부터 이스라엘 정치에서 주요 정치적 세력이자 생존자였다. 그러나 최근 법원 개혁이라는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병원에 입원한 점을 고려하여 그의 경력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중동지역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로서 나는 네타냐후 총리의 장기적 유산은 세 가지의 주요한 정치적 전개 상황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그는 이스라엘 정치를 우경화시켰고, 둘째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탄생을 방해했으며, 셋째 그는 이스라엘과 비민주적인 국가와의 유대를 강화했다.

민주주의에서 신권정치로

네타냐후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다. 이후 그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총리로 재임했고 2022년에 다시 집권했다.

 

한때 좌파 지향적 정치로 알려졌던 한 국가(이스라엘)는 이제 행정권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를 억압하는 유대교 종교 민족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우파 정부를 갖게 되었다.

 

네타냐후는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과 직장 경험, 그리고 이스라엘군 보안 부서에서의 군 경력이라는 두 가지 주요 자질을 바탕으로 1996년 총리가 되어 그의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자질은 그가 미국 정치와 이익 집단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그의 자질은 이스라엘이 미국 정부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그의 자질은 군이 핵심이자 존경받는 기관인 이스라엘에서 그를 정치적 성공으로 이끌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지원과 함께 수년간 미국으로부터의 대규모 해외 원조와 군사 지원을 통해 이스라엘군은 중동의 다른 어떤 국가의 군대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을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경제를 안전하고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다른 선출된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와 그의 지지세력들은 우익 민족주의자들과 분열을 일으키는 정치로부터 지지를 얻고 격려를 받아 왔다.

 

네타냐후 총리의 경우, 이것은 국제법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으로 간주하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있는 유대인 정착민들(대부분 정통 유대교 신자)과 강력하게 동맹을 맺는 것을 의미했다. 정통 유대교 가정이 세속적인 가정보다 인구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체 인구는 당연히 정착민 운동에 힘을 쏱는 네타냐후에 지지를 보내고 이스라엘 안보에 대해 광범위한 초점을 맞추는 정치인과 유권자를 선호해 왔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에서 집권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부패와 범죄 혐의를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법적 취약성은 그의 독재적 경향을 강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2년 네타냐후 정부는 법안 및 정부 조치를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이스라엘 사법부의 권한을 약화시킬 사법 개혁 법안을 추진하면서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법 개혁은 대법원의 권한을 점점 친(親) 정착민, 친(親) 정통 유대인화하는 정부에 대한 부적절한 세속적 견제로 보는 네타냐후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사법 개혁은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는 심지어 저명한 군인들까지 참가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지중해 연안 근처의 세속적이고 도시화된 시민들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나 그 근처에 사는 정통 유대교인과 정착민들 사이에서 분열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들 두 그룹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정통 유대교인과 정착민들은 국가를 보다 신권적인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나가야 할 방향을 둘러싼 이 분열적인 싸움은 베냐민 네타냐후의 리더십에 주로 기인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거리두기

네타냐후 총리는 1967년부터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 하에 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영토 보존과 안보에 대해 팔레스타인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오랫동안 약속해왔다. 그리고 그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의 빠른 확장을 허용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정책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의 가장 확실한 유산 중 하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사람들과 이스라엘인을 분리하는 물리적 장벽을 세운 것이다. 이 장벽을 통해 이스라엘 당국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오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이 장벽으로 인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군 복무 기간 외에는 팔레스타인과 많은 접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물리적 분리와 함께 이스라엘군을 이스라엘 전역에 배치함으로써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의 공격이 감소한 반면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로 여행이 어렵게 된 팔레스타인이 통제하는 지역에는 고통이 증가되었다.

 

이러한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개의 분리된 국가를 기반으로 한 평화안을 위해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교환하는 최종 협상을 하라는 유대인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압력을 최소화했다. 이 정책은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기본적인 자유와 기회를 박탈했으며, 특히 인권 운동가들이 “야외 감옥”이라고 부르는 가자지구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각했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2004년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돌려준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가자지구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막강한 이스라엘군을 동원해 강력한 공격을 해왔다.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군사행동을 옹호하는 팔레스타인 단체인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책임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를 지지하는 우파 진영의 바람을 반영하여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일관되게 강력하게 반응을 해 왔다. 그는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유대 국가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창설 이전의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갈 권리가 없다는 것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합의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특히 협상의 전제조건으로서 이러한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과 조건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네타냐후 정부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지켜보는 많은 베테랑 관찰자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개의 분리된 국가를 상정하는 두 국가 해결안이 여전히 가능한지 의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동맹 재편

이스라엘의 권리를 강화하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약화시키는 것이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를 재편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의 노력의 핵심이다. 이러한 노력은 부분적으로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늘 적대적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외 청중들에게 이러한 이란의 적대감을 활용하여 미국에게 이란을 공격할 것을 촉구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의 반(反)이란 캠페인은 다른 국가와 유대를 강화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들 국가들이 이란과의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민주 국가든 친(親)이란 무장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반(反)이스라엘 정서와 많은 아랍국가에 대한 공격을 조장하는 국가이든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안보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아랍에미리트와 기타 여러 아랍 국가들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기꺼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보다 일반적으로 네타냐후 총리는 오랜 재임 기간과 인종 차별을 부채질하려는 그의 의지 때문에 러시아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등 권위주의적이거나 분열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다른 통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은 이스라엘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에서 큰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인과 미국 유대인들은 윤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와 협력하는 미국 내 단체들은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종종 반(反)유대주의적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목소리를 침묵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더욱이, 네타냐후 총리의 권위주의적 경향과 그의 정부의 우파적, 신정주의적 경향은 이스라엘이 민주국가라는 것에 회의를 품고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축소를 요구하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과 더 넓은 세계를 심오한 방식으로 재편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주요 아랍 국가들 간 군사 안보 및 협력이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망을 잠식시키고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민주주의로 남아있으려는 도전은 무시하고 군사 및 안보 해결책만을 강조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First published in :

Th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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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Mednicoff

David Mednicoff 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미국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Amherst  대학 Judaic & Near Eastern Studies 학과장이다. 그는 또한 공공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전공분야는 중동법과 정치, 국제법, 인권, 세계화, 비교정치, 미국 외교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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