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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Security

알제리와 모로코의 분쟁

모로코 v. 알제리 대결, 종교 갈등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Carlos Echeverría Jesús

First Published in: Apr.29,2024

Jun.10, 2024

알제리와 모로코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를 특징짓는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경쟁의 배경을 고려해서 분석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모로코가 이웃 국가와의 갈등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특징지어왔던 지역적 역학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그레브 국가들 간의 전략적 긴장의 기원과 전개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모로코의 독립은 알제리보다 훨씬 덜 드라마틱했는데, 1962년에 알제리가 독립한 이후 모로코는 아랍, 아프리카, 이슬람 이웃 국가와 관련하여 "지역적으로 불리한 입장"라는 개념을 적용시켜 왔다. 

 

“지역적으로 불리한 입장”의 개념을 정의하면, 모로코가 많은 국가들에게 불편한 이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알제리 이전에 모리타니아에 대해서 그러했는데, 독립국가로 인정될 때까지 10년이 걸렸기 때문에 그러했으나, 1970년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1958년에서와 같이, 스페인과의 관계에서, 즉 독립 2년 후에 타르파야(Tarfay)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69년에는 시디 이프니(Sidi Ifni)를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1960년 이후에 독립한 말리와의 관계에서도, 모로코는 옛 카라반의 경로와 수세기 동안 모로코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닌 영토에 대해서 주권이 반영되어 친교를 엮을 수 있는 정치, 종교, 상업적 관계를 바탕으로, 모로코 권력에 의해 획득한 것으로 추정되는 권리, 즉 통치 왕조가 획득한 권리에 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제리는 모로코가 더 강력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발전시켜 온 국가인데, 양국은 이미 두 번의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한번은 1963년 모래 전쟁이었고, 그리고 다른 한번은, 1976년에 한쪽에서는 모로코와 모리타니아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사하라 사막과 함께, 스페인 군대가 철수한 후 같은 해에 발발했다. 

 

마그레브 두 국가들 간의 전략적 긴장은 모로코가 이웃 국가의 국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지역 및 국제 무대에서 각각의 입장을 우위에 놓으려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상속받은 국경에 대한 모로코의 의문


1972년 6월 15일에 양국은 라바트에서 국경 조약을 체결하였지만, 1973년 5월 17일에 알제리에 의해 비준되었고, 그리고 20년 후인, 1992년 6월 22일에 모로코에 의해 비준되었다; 모로코인들은 이를 비준하기 위해서 시간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의회의 승인을 받은 모로코는 유엔에 비준서를 기탁하는 마지막 절차를 밟지 않았다. 따라서, 이 조약은 효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당시에 모로코는 상속받은 국경을 수용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서사하라의 독립 가능성에 대한 모로코의 의문


모로코는 1976년에 알제리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고 1988년까지 외교 관계를 회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에, 알제리는 민족 해방 운동의 챔피언이었고, 1973년에 서사하라의 자치와 독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운동인, 폴리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의 출현을 처음으로 지지하였다. 

 

로드리게스 데 비구리 (Rodríguez de Viguri) 대령의 지휘 아래 실시된 자율적인 국민투표를 대비하여 1974년에는 엄격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고, 하이메 데 피녜스 대사가 이끄는 유엔에서 스페인의 외교적 역학 관계에 의해 스페인이 그 당시에 이미 영토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1975년 가을에 녹색 행진(Green March)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것이 가속화되었고, 모로코와 모리타니아 군대가 이전 지역을 침략한 것과 병행하여 1976년 2월에 우리나라는 그 영토를 떠나야 했다. 1975년에, 모로코는 현재까지도 적용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략과 관련하여 자국의 스킬을 발휘하고 있었다. 

 

전쟁은 1988년까지 지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에 1972년 국경조약과 관련하여 모로코의 외교적 책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하산 2세 국왕은 1981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통일 기구(OAU) 정상회담에서 영토의 최종 상태를 규명하기 위해 국민투표 방식을 수용했다가 철회하였고, 43년 후에, 그의 아들인 모하메드 6세의 주도로 영토를 합병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속임수를 사용하는 확장주의자 모로코가 상황을 이끌어갔다.

 

 

두 지역 강대국간의 경쟁과 그들의 아프리카 시나리오


1976년에 알제리와 외교관계를 단절한 국가가 모로코였다면, 2021년 8월에 모로코와 외교관계를 단절한 국가는 알제리였다. 양국은 모로코가 다시 열을 올려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육상국경을 1994년 이후에 폐쇄하였는데, 이는 양국 관계의 기반이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땅에서 알제리와 모로코 간의 가장 중요한 긴장 시나리오 3가지는 다음과 같다: 리비아의 미래 관리, 사헬에서 모로코의 영향력 증가, 나이지리아와 연결된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대한 공개 경쟁이다.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 AU)에서 모로코의 끊임없는 공세의 배경에는 서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SADR)의 승인에 대하여 항의로서 모로코가 1984년에 떠났던 OAU의 계승자와 내부적으로 알제리의 강력한 위치를 약화시키기 위해 2017년에 복귀하기로 결정한 모하메드 6세가 있었다. 

 

리비아의 외교 관리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민감한 회의를 위한 장소로 모로코의 두 도시인, 쉬라트와 부즈니카가 선택되었으며, 예상한 것처럼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 아랍의 봉기와 2011년에 무아마르 알 가다피의 몰락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그레브 국가를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것은 알제리의 이중 상처를 악화시켰다. 첫번째는 리비아와 사헬의 불안정을 초래한 외국의 간섭으로 인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알제리가 전통적으로 특권적 지위를 가졌던 마그레브 동부의 시나리오에서 모로코의 경쟁자의 위치가 사헬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로코는 또한 리비아에 있는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과의 강력한 관계와 다국적 사회, 특히 UN에서의 영향력을 포함하여, 리비아와의 관계에서 이점을 활용하였다. 모로코는 리비아의 영토 통합을 지지할 때, 서사하라에 관하여 모로코의 "영토 통합"에 대한 경고를 능숙하게 하였는데, 이는 모로코의 외교 역학 관계에서 항상 존재하였다. 

 

그리고, 리비아 문서와 연계해서 모로코의 계획 중에는 알제리의 이익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는 사헬리안 문서도 있었다. 알제리의 외교 안보 정책은, 2000년대에 타만라셋에 기반을 둔 합동 작전 참모 본부(CEMOC, 스페인어 이니셜로 CEMOC)를 설립한 것이었고, 2015년 - 그 해 5월과 6월에 – 알제리 협정에 서명하였으며, 그 이후로 최근까지 말리의 안정화를 이루기 위한 핵심 도구로 간주되었으나, 사건의 전개와 모로코 계획의 개발로 인하여 가려져 왔다. 

 

알제리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가 이끄는 서부 사헬에서 서방 군대의 존재가 이제 실질적으로는 사라졌지만, 불안정은 지속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알제리를 노출시키고 모로코의 침투를 가속화하였다. 예를 들면, 첫 번째는 말리의 표류인데, 아셈미 고이타 대령이 이끄는 쿠데타 정부는 알제리 협정의 서명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테러범"으로 간주하여, 그들을 추적해서, 알제리와 바마코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이와 동시에, 모로코의 존재는 외교 및 상업적 차원에서 종교적 차원으로 점점 더 가시화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다자적 성격의 것이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서 발생하여 통합되었던 쿠데타가 서방과 알제리와의 관계를 냉각시킨 복잡한 시나리오에서, 2024년 1월 4일 마라케치에서 나세르 부리타 모로코 외무부 장관이 소집한 부르키나파소, 차드, 말리, 니제르 외무부 장관 회의는 관계를 강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가스 파이프라인 경쟁은 난항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이다. 비록 지연되었지만, 2009년 이래로 가장 오래되고 또한 가장 실행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프로젝트인, 니제르를 거쳐 알제리와 나이지리아를 연결하는 트랜스-사하라 가스 파이프라인(TSGP) 프로젝트는 라바트가 모든 영향력 있는 도구들을 배치하고 있는 더 새롭고 복잡한 프로젝트인, 나이지리아-모로코 가스 파이프라인(NMGP) 프로젝트에 맞서 진행되었다. TSGP는 4,300킬로미터 길이에 불과하며, 알제리와 나이지리아 영토 모두에 이미 완공된 구간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략 130억 달러의 재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2027년에서 2030년 사이에 운영될 것 같다. 주요 단점은 니제르의 불안정한 시나리오를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NMGP는, 14개 주의 바다를 통해 배치되어야 하며, 25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대략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모로코는 "대서양 협력"이라는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설계함으로써, 주요한 국제적 후원자들, 즉 아랍과 서방 후원자들 뿐만 아니라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ECOWAS)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하메드 6세는 2023년 11월 6일에, 녹색 행진 48주년 기념 연설에서 "아프리카의 대서양 유대를 위한 개발 도구"로 묘사했으며, 서사하라 영토를 중요한 단계들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그와 더불어, 그 지역과 세계에서 항상 번창하고 잠재성이 충만한 "모로코 사하라"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만약 TSGP가 서부 사헬에서 니제르와 다른 국가들에게 에너지 공급을 약속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면, 모로코는 NMGP를 통해 그들의 에너지 수요와 심지어 이들 내륙 국가들의 대서양 지역에 대한 접근이 충족될 것이라고 이들 국가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U에서 모로코의 외교적 입장 재조정은 대륙기구에서 모로코의 적수가 부재한 지난 30년 이상 동안에 편안한 위치에 익숙해졌던 알제리와의 긴장을 악화시켰다. 알제리는 평화 및 안보 기관에서 외교관들이 차지하는 일부 핵심 위치를 잃었으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AU에서 이스라엘을 참관인 국가로 받아들이려는 모로코의 미묘한 점에 주의를 기우려야 했다. 2021년 7월에 무사 파키(Moussa Faki) AU 위원장과, 아디스 아바바에서 알제리-남아공의 결속된 노력이 이러한 일이 발생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정회원국으로서 SADR의 지위를 약화시키려는 모로코의 노력은 변함이 없다.

 

 

강대국 간의 지정학적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국제무대에서 모로코가 주도한 투쟁


모로코는 냉전 시대에, 서부 지중해의 민감 지역에서 서구의 옹호자임을 보여주면서 뛰어난 실력을 과시했다. 아랍권에서 온건하고 안정된 국가라는 점을 제외하고, 알제리와 리비아에서 뿌리를 내린 것으로 간주되었던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벽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미국과 유럽을 설득하였다. 냉전 이후에도, 모로코는 인접국인 알제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위협에 대해 온건주의와 안정성이라는 카드를 계속해서 사용하였다. 이 시기는 정보와 지식의 도구 덕분에, 지하디스트의 위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 탁월했고, 우리의 안보에 대한 보장으로서 항상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시기 동안에, 모로코는 적국의 이미지를 훼손시킨 반면에, 자국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확실한 능력을 발휘하여, 2000년대에 EU를 시작으로, 미국과 NATO와의 특권적 전략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미국과 관련하여, 1777년 12월 당시에 모로코가 근대 국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모로코 술탄이 현재 초강대국이 된 국가의 독립을 인정한 세계 최초의 지도자였다는 말을 능숙하게 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보루 역할을 하였고, 이제는 마그레브에서 러시아나 이란의 전진에 대항함으로써, 모로코는 워싱턴 DC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리고 이러한 모로코의 '로비스트'들은 지속적으로 이미지를 가다듬고 있다. 오래동안 지속해온 연합 군사 작전인 "아프리카의 사자"는 모로코의 리더십을 인정받는 순간을 누리게 하였으며, 비록 지금까지는 실패했지만, 각 단계에서 노력하여 서사하라에서 "현존하는 모로칸(de facto Moroccan-ness)"을 굳건히 하고, 필수 불가결한 행위자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과 관련해서, 1987년에 공식적으로 유럽공동체 가입을 신청했지만 실패했던 모로코는 다양한 영역에서 특권적인 대우를 계속해서 받았고, 종교적인 열망을 강화하고자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EU 기관에서 '로비'를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 왔으며, 특히 사하라의 "모로칸(Moroccan-ness)" 원칙을 강화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공개적인 갈등을 향해 가고 있는가?

 

서사하라와 관련하여, 모로코의 야망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으며, 여러 국가들이 서로 다른 도구를 사용하여 협박할 정도로 다양한 압박 전술의 사용은 더 많은 스캔들이 되어 가고 있다. 한편으로, 이 영토는 2020년 11월 13일 모리타니와 전략적인 국경인 게르게라트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해 30년 이상 동안 휴전을 파기한 폴리사리오 전선이 주기적인 전쟁 보고서를 발행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현장이며, 모로코는 주로 드론을 사용하여 폴리사리오에서 많은 사상자들을 냈다(우연하게, 그 이후에 알제리와 모리타니 국민이 사망하는 부수적인 피해를 입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를 "저강도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있지만, 고조될 위험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한편으로, 모로코의 관계는 알제리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모리타니아와, 그리고, 튀니지와는 약간 정도로, 점점 나빠지고 있다. 

 

그러나, 알제리와 모로코 간의 긴장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서사하라 분쟁 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긴장은 더 깊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무분별한 담론의 강화와는 별개로, 점점 더 도발적으로 지도제작에 대한 담론을 동반하여 "동사하라"라는 용어를 부활시킨 점과, 스페인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모로코는 강대국들 간의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더 넓은 맥락 안에서 이웃 국가의 관리를 고려하고 있어서, 그러한 상황이 잠재적으로 펼쳐질 전개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사하라의 모로코'를 인정한 것은 아랍 3개국(UAE 바레인, 모로코 가입)가 이스라엘과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에 모로코가 유리한 위치에서 거래하여 포함됨으로써, 어두운 장면으로 이어진 이러한 거래는 마그레브와 서부 지중해 지역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알제리와 모로코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분석한 결과에 대하여, 알제리 당국은 이 모든 기간 동안에 외국의 간섭으로 인한 리비아와 서부 사헬의 상황 악화와 모로코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의 조정에 대한 전략적 우려, 즉 알제리인들이 "이스라엘의 적이 바로 문 앞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로코의 상륙에 대해서 전략적 우려를 추가했다. 모로코의 아브라함 협정 서명 이후에, 모로코 땅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는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으며, 2021년 11월에 베니 간츠 국방장관의 라바트 방문에 그 진원지를 두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고급 방위 물자 획득이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였다. 이 모든 상황은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5차 전쟁 발발로 인해 더욱 악화되는 시나리오에서 발생하였다. 다른 국가들에게는 무해해 보일 수 있는, 다국적 훈련인 "아프리카의 사자 2022"에서 이스라엘 군사 참관인은 바로 전년도에 모로코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던 알제리를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여, 불만 목록에 추가하였다. 

 

모로코는 또한 알제리를 묘사하기 위해서 이 시나리오를 사용했는데, 1985년에 이스라엘이 튀니지의 PLO 본부를 폭격한 이후, 1980년대 후반에 팔레스타인 대의를 가진 아랍 세계에서 전통적인 지지자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 인식을 강화하고, 알제리를 이란과 그 '대리자들', 특히 헤즈볼라의 동맹국으로 묘사했다. 2009년과 201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 모로코는 알제리에 대해 망상적인 비난을 시작할 기회를 포착하여, 이웃 국가를 서방 국가들과 이란에 가장 반대하는 걸프 석유 군주국들 모두에 대하여 이란의 가까운 동맹국으로 묘사하였고, 헤즈볼라가 폴리사리오 전선을 훈련시키고 무장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모로코는 변동이 심한 중동 시나리오를 유리하게 활용하는 것 외에도,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서방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배경을 이 방정식에 추가하였다. 러시아와 탁월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로코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 2022년에 모로코-러시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협정하였고, 2022년에 ROSATOM과 핵 협력에 관하여 협정하였으며, 2023년 12월에 마라케시에서 아랍-러시아 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 알제리를 서방의 문 앞에 있는 러시아의 위험한 동맹국으로 묘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모로코는 다양한 전자 도구를 통해서 2022년 11월에 알제리로부터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며, 100명의 러시아 낙하산 부대원이 참여했던 베차르 지역에서 알제리-러시아 군사 기동을 임박한 위협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군사 기동은 이스라엘 군사 참관인을 포함한 13개국에서 7,500명의 병력이 "아프리카의 사자 2022" 훈련에 참가한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이 경우는 서사하라와 국경 근처, 그리고 알제리와도 국경 근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언급은 덜 격렬하지만 모로코 군 병력이 최근 몇 년 동안에 중국 기지에서 드론 작전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중국과 러시아 모두 서사하라 해역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해 온 것처럼, 모로코가 방위 영역에서 우려의 원인이 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정치-외교 및 안보 차원에서 모로코의 진전을 추가해야 한다. 그 배경에는 양국의 국방비 증가가 있는데, 이는 안보 딜레마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알제리는 전통적으로 GDP의 7퍼센트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는 소규모 국가 그룹에 속하지만, 모로코는 국가 연합에 가입하면서 국방비를 아낌없이 지출하고 있는데, 기하학적으로 발전(2022년 3.6퍼센트에서 2024년 9퍼센트로 예상하고 있다)하고 있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알제리는 모로코가 보유하지 않은 잠수함 무기의 특수성을 유지하고 있고, 육군 및 공군에서도 상당한 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모로코와 관련하여, 질적인 측면이 양적인 측면보다 더 상당히 월등하다. 그러나, 모로코는 육상 및 항공 자산을 현대화하고 확장하면서 방공 시스템, 전자 전쟁, 그리고 향후 관측 위성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 이스라엘과 유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더 이상 프랑스(탈레스 에어버스) 제품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 IAI)제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서사하라와 같은 전쟁 시나리오에서 무장 드론을 사용하는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하이브리드 전쟁에서도 도구를 계속 정교화할 것이다.

 

 

결론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익숙한 모로코는 야망과 거만함을 표출하는 게임에서 하얀 조각을 쥐고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게임에 빠져 있으며, 이웃 국가 알제리는 스페인처럼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겠다고 태도를 비추고 있다. 

 

2020년 11월에 폴리사리오 전선의 휴전, 2021년 8월에 알제리의 외교 관계와 같이 파열음이 발생한 시기에, 알제리와 모로코 간의 긴장의 고조는 이전의 위기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한 수준에 있다. 서사하라에서 혹은 국경 지대에서 긴장이 점점 확대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마그레브와 사헬의 악화된 전선이 겹치면서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더 불안정해졌다. 

 

알제리와 모로코 간의 관계와 그의 특징을 분석할 때, 우리는 스페인을 언급하지 않고 이 글을 마무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로코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중요한 상업적 파트너이자 스페인이 중요한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창이다. 그러나, 모로코가 불법적인 영토 주장으로 일관되게 비우호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행위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스페인은 영토 주장과 서사하라 합병을 통합하려는 시도로 끊임없이 괴롭히는 성가심을 떨쳐버리고, 국익 차원에서 모로코와 보다 까다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이 오늘날처럼 더 명확한 적이 없다. 그리고, 모로코와 알제리 간의 영구적인 긴장의 격동기에서, 양국 모두와 건전하고 유익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스페인의 외교 정책에 알제리가 희생될 수는 없다.

First published in :

faes Fund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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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s Echeverría Jesús

UNED 국제관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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