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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 Economics

보우소나루즘(Bolsonarism)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

Curitiba, Paraná, Brasilien, Bolsonaro 가젯, Curitiba 독립 기념일, 2022년 7월 9일

Image Source : Shutterstock

by Valerio Arcary

First Published in: May.28,2024

Jun.17, 2024

PT 주도의 정부에 대한 정치적 충성이 극빈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 중도좌파는 사회적 기반에 대한 패권을 상실했다. 

 

보우소나루(Bolsonaro)는 2026년에 다시 집권할 수 있을까? 그렇다. 2023년 1월에 반-봉기 참패 이후에, 극우의 회복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강력한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우선, 극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현상에서 국제적 맥락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a) 중국의 강화와 더 강력한 보호주의 성향의 트로이카의 우월성을 보존하려는 미국 제국주의 전략에 따른 국가 시스템의 혼란, (b) 환경 위기의 출현과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분쟁, (c) 대중의 항의에 직면하여 민족 제국주의 노선을 수용하는 권위주의 정권의 방어를 향한 부르주아 파벌의 이동, (d) 경제 정체와 중산층의 빈곤 및 우경화를 향한 추세, (e) 좌파의 흔들리는 위기이다. 그러나, 이 국가의 정치적 분열에는 브라질의 특이점이 있다. 본질적으로 다섯 가지가 이에 해당된다: (i) 군과 경찰 간의 패권, (ii) 오순절 복음주의자들의 대다수가 극우로 향해가는 경향, (iii) 가장 발달된 지역인, 동남부와 남부에서, 특히 새로운 중산층인 재산가들이나, 또는 민간 및 공공 부문에서 임원직을 맡고 있는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 가운데서 보우소나루즘의 높은 비중, (iv) 극우 내에서 신-파시스트 흐름의 주도권, (v) 최저 임금보다 3~5 또는 7배까지 임금을 받는 중산층 봉급자들의 극우에 대한 지지. 

 

앞의 네 가지 특수성들은 많이 연구되었지만, 뒤의 네 가지 특수성은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여전히 반동적인 사회적 권력 관계라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려는 전략이다. 

 

소비와 생활수준의 모델을 위협하는 사교육비와 보건계획의 인플레이션, 소득세 인상 처럼, 노동자 계층과 극빈층 간의 거리두기, 분열 그리고 정치적 분리를 설명하는 객관적 요인과, 사회적 공분, 도덕-이념적 원한과 같은 주관적 요인이 있다. 이 둘은 서로 얽혀 있고, 심지어 불가분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45년 전,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투쟁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되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PT는 금속 노동자, 공립학교 교사, 석유 노동자, 은행가 그리고 대중의 현실에 비해서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더 나은 월급을 받은 계층의 지지를 받아서 탄생했다. PT가 이끄는 정부에 대한 정치적 충성심, 즉 룰리즘(Lulism)은 극빈층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좌파는, 비록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근원적으로 대중사회 기반에 대한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은, 노동자 계층의 붕괴로 인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10년마다 GDP가 두 배로 증가하고 있고, 도시화의 가속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브라질에서 사회적 이동을 선호했던 시기에, 전쟁 이후(1945-1981)의 극도의 성장은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경제 활동 인구의 절반이 문맹인 국가에서, 완전 고용과 교육의 증가는 이 계층의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있어서 두 가지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과거와 같이 더 이상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브라질의 자본주의는 추진력을 잃었음이 분명하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 GDP의 7%가 감소하였고, 2020/21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2019년 수준으로 되돌아오는 데 3년이 걸렸다. 생산 비용 절감을 목표로 노동, 사회 보장 등 반-사회적 반-개혁에도 불구하고, 공공 지출 한도를 넘어서기 위해서 과도기의 제안 헌법 개정안(Transitional Proposed Constitutional Amendment, PEC)을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에 투자율은 GDP의 18%를 초과하지 못했다. 

 

주변국에서 가장 큰 산업 단지이자, 내구재 소비 시장인 브라질은 이제 성장이 더딘 국가가 되었다. 교육의 증가는 더 이상 강력한 원동력이 아니었다. 삶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2024년의 브라질은 20세기보다 덜 가난한 국가이지만, 덜 불공평한 국가는 아니다. 물론, 여전히 빈곤은 존재한다: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에도 불구하고, 경기 순환에 따라 수천만 명 혹은 그 이상이 계속해서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불평등의 질적인 감소 없이 극심한 빈곤이 감소했다. 

 

자본과 노동 간의 소득의 구조적 분배는 오차범위에서 많은 변수가 있다. 개인 소득 분배는 2003년에서 2014년 사이에 개선되었지만, 지우마 호세프 정부에 대항하여 기관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인 2015/16년부터 다시 증가했다. 극심한 빈곤은 감소했지만, 경제 활동 인구의 절반은 최저 임금의 두배 이상을 받았다. 임금 근로자의 3분의 1은 최저 임금보다 3 ~ 5배의 임금을 받았다. 불평등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육 수준이 높은 중간 소득 임금 근로자의 지위가 하향 편향으로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교육의 증가는 고용 가능성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많은 연구를 통해서 확인되었으며, IBGE 조사에서는 교육이 증가함에 따라 역설적으로 실업률이 더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 창출된 수백만 개의 일자리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매우 낮은 조건이기 때문에, 최저 임금의 두 배 정도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였다. 

 

어떤 국가의 사회적 응집력이 큰지 혹은 적은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이동성 비율을 고려한다: 절대적 이동성과 상대적 이동성이다. 절대적 이동률은 부모와 아이의 직업, 혹은 각자의 첫 번째 경제활동을 그들의 마지막 직업과 비교한다. 상대적 이동률은 더 낮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발전을 선호하지만 극복할 수 없었던 직업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장애물들이나, 또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들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한다. 

 

브라질의 경우에, 1980년대까지는 절대적 이동률과 상대적 이동률 모두가 긍정적이었으나, 절대적 이동률이 상대적 이동률보다 더 높았다. 즉, 도시화와 내부 이주의 압력으로 인하여, 전쟁 이후에 동북에서 동남으로, 남부에서 중서부로, 극심한 사회적 이동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단계는 1990년대에 농업세계의 흐름이 고갈되면서 끝이 났다. 

 

그 이후에, 빈곤은 감소했지만, 중산층 노동자들은 더 적대적인 현실을 경험했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이유는 지난 20년동안 사회적 이동의 궤적을 살펴보면, 극빈층으로 살았던 수백만 명에게 혜택이 부여되었지만, 생활이 크게 나이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었지만, 그들의 부모가 차지한 것에서 바로 위로 한 단계 올라섰을 뿐이었다. 

 

교육을 증가시킬만한 물질적인 인센티브가 낮았기 때문에 상대적 사회 이동성은 지난 40년 동안 50대나 60대의 성인들에게는 매우 낮게 유지되었다. 교육에 대한 접근이 더 용이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최소한 12년 동안 자녀들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받은 보상은 이전 세대에 비해 감소하였다. 

 

어떤 국가는 사회적 불평등이 큰 상황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전쟁 이후의 이탈리아처럼 사회적 이동성이 증가할 경우에, 사회적 불평등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응집력은 높아져야 한다. 이와 반대로, 세계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웃국가에 비해 사회적 불평등이 낮았던 국가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이동성이 퇴보할 경우에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브라질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직업들의 대부분은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았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실업의 위험이 감소되지 않았다. 1979년 이래로 45년 동안, 평균적으로 교육 기간은 3년에서 8년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하는 청년들의 의식에 두가지 변화가 일어나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브라질 자본주의가 반세기 동안 그랬듯이, 더 이상은 완전고용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자녀를 공부시키고 노동시장의 진입을 지연시키면서 가족들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의 가능성은 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저임금을 제공하는 경제 활동에만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이들은 부모들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었다. 

 

고학력자의 실업률은 저학력자보다 비례적으로 높았으며, 또한 지난 15년 동안 개인소득의 불평등이 감소했다면, 이는 중·고학력자의 평균 급여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우버화(uberization)의 아찔한 확대는 놀라울만한 일이 아니다. IBGE의 월별 고용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수도권 지역은, 기껏해야, 인플레이션 회복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느리게 발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이 종식된 지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경제 및 사회적 균형이 후퇴하고 있다. 교육 접근성 확대, SUS (Unified Health System, 건강 통합 시스템) 시행, 극빈층을 위한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와 같이, 정권이 추진한 개혁들은 진보적이었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학력 인구가 점진적으로 국가의 정치 현실을 변화시켜서, 경제성장과 소득분배의 지속적인 순환을 이끌 것이라는 가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한계에서 사회정의의 관점으로 볼 때 점진주의적 환상의 한 가지 형태는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인구가 국가의 사회적 현실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이는 "야생적" 자본주의를 규제하기 위해 지배층과의 화해에 베팅했던 PT가 이끄는 연합 정부의 한계였다. 학교 교육과 경제 성장 간에 장기적으로는 상관관계가 있지만, 한국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변수를 포함할 경우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직접적인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개혁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부르주아 계급이 2016년에 지우마 호세프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단결했다는 점이다. 미셸 테메르와 같이, 그들의 직접 대표들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하기 위해서 정권의 규정을 파괴하고, 탄핵을 조작하는 극단으로 가는 것에 관하여 지배 계층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는 점에 놀라서는 안된다. 노동 계급이 왜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기꺼이 싸우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1990년대 초에는 임금이 국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1999년에는 4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4년부터 2010년 사이에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14년 임금의 50% 수준 아래에 머물러 있다. 2024년의 브라질은 이미 농촌에서 도시로 역사적 전환이 완료되었던 사회이며(인구의 86%가 도시에 거주), 계약 대상자 대다수는, 노동 계약자 3천 8백만 명과 공무원 1천 3백만 명이 급여를 받기 때문에, 이러한 변수는 사회적 불평등의 전개를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천만 명은 고용주는 있지만 계약을 하지 않았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브라질 국민이 아직 2천 5백만 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과거에 비해 비례적으로 적은 편이다. 요약하자면, 자본과 노동 간의 소득의 구조적 분배가 개선되지 않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유주의 정권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이나 기타 다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부 부르주아 계급은 신-파시스트와 권위주의 전략을 지지하고 있다.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 사회적 불평등이 감소했다는 데이터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비록 궁핍하지만, 불공평이 감소했기 때문은 아니다. 노동시장에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이 발생했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오래된 것이다. 첫 번째는 숙련도가 낮고 조직이 낮은 부문에서 임금이 상승한 것이다. 1994년에 레알(real)을 도입한 이후에 최저임금이 평가절하를 상회하는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룰라(Lula) 정부와 지우마 호세프 정부 시기에는 가속화하였다. 

 

이는 지난 15년 동안에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듯이, 새로운 현상이었다. 최저임금이 INSS 연금의 바닥이기 때문에 경제의 핵심 변수로 등장하였으며, 부르주아는 최저임금을 해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원자재 수요 증가 사이클에 따른 경기 회복으로 2005년 하반기부터 실업률이 하락하였고, 2014년에는 거의 완전 고용 상태로 정점을 찍었다. 

 

'볼사 파밀리아'는, 특히 산업화가 안된 지역에서, 육체 노동의 보수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경향은 1980년대부터 지속되어 왔던 중고등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업의 보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데이터에 의하면, 과거처럼 학교 교육을 늘리는 것이 사회적 상향 이동의 중요한 요인이 더 이상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룰리즘(Lulism)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정치적 충성심이 첫번째 현상이다. PT 정부 기간 동안에는 극빈층의 삶이 나아졌다. 최저 임금의 두 배 이상을 받은 임금노동자들의 분열은 보우소나루즘이 조작해 왔던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였다. 좌파가 이 분야의 노동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2026년에는 위험이 클 것이다.

First published in :

La Haine /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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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rio Arcary

 

역사가이자, PSOL(Resistance) 활동가이며, O Martelo da História의 저자이다. 

Ensaios sobre a urgência da revolução contemporânea (Sunderman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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