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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뉴칼레도니아와 인도-태평양
Image Source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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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in: May.20,2024
Jul.01, 2024
뉴칼레도니아에서 40년 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심각한 폭력사태를 프랑스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프랑스의 미래 역할 뿐만 아니라, 태평양과 인도-태평양에 거주하는 강대국으로서 인정받는 것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립 지지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아주 어린 토착민들이며, 이들의 폭력사태는 이전의 평화 협정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뉴칼레도니아를 1980년대의 유혈 사태로 되돌아가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불안감은 뉴칼레도니아의 수도인 누메아와 그리고 주로 프랑스어를 지지하는 유럽인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
상처가 깊다. 1980년대에 폭력을 종식시켰던 평화협정은 프랑스 국가, 충성파 정당, 그리고 독립당이 힘겹게 끊임없이 타협을 해서 대부분은 성공에 이르렀다. 프랑스 정부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뉴칼레도니아에서 세 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은 자결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상호 신뢰를 뒷받침했다. 처음 두 차례의 국민투표는 완벽하게 조직되었으며, 각각 56.7%와 53.3%가 독립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2021년에 실시한 제3차 국민투표에서 원주민이 국민투표를 연기해 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투표 날짜를 고수하여 투표가 실패로 끝났다. 그 당시에, 수백 명의 카낙족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긴 애도 의식을 갖춰야 하는 전통 때문에 국민들에게 선거 캠페인이나 투표를 요청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원주민의 보이콧으로 인하여 독립에 대한 반대가 96.5%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로, 분열이 깊어졌다. 파리 정부의 지원을 받는 충성파들은 세 번의 투표가 모두 유효했고 그 영토를 프랑스의 일부로서 굳히기를 원했다. 독립 단체들은 세 번째 투표를 거부하고, 또 다른 투표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일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마크롱이 2023년 7월에 방문했을 때, 그들은 체민 드 사면(chemin de pardon ; 용서의 길)이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들은 마크롱이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지지자들은 마크롱의 주요 연설에 나타나지 않았고, 강한 불만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마크롱은 지역 정당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독립 투표와 유권자 자격에 관하여 12월에 개최된 각 정당 간의 비공식적인 논의가 큰 차이로 끝났다.
마크롱은 기한을 설정하기 위해서 지방선거를 2024년 4월에서 2025년 12월로 연기하는 법안을 발의하였고, 6월 말 이전에 지역 주민들이 합의하지 않는다면, 프랑스 헌법을 개정하여, 유권자 자격을 확대하고, 카낙족의 투표권을 실질적으로 저하시키는 또 다른 법안을 발의했다.
프랑스 국회가 파리에서 유권자 자격 확대를 부여하는 것에 관하여 논의하던 5월 13일에 시위가 폭력으로 번졌다. 젊은 카낙족들이 자행한 파괴는 그들의 목표였던 프랑스와 충성파 정당들 뿐만 아니라, 카낙족 지도자들과 이웃 국가들에게 조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무시와 배제를 느낀 새로운 세대의 깊은 고통을 알리는 신호였다.
뉴칼레도니아의 인구는 약 270,000명이다. 2019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토착민인 카낙족이 41 퍼센트였고, 유럽인들이 29 퍼센트, 그리고 태평양 섬 주민들과 '기타 다른 주민들'이 나머지 30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올해에 인구조사를 다시 실시할 예정이다.
2015년부터 매년 약 2,000명의 사람들이 순수이탈을 해 왔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비-토착민이고, 지금은 카낙족이 45%를 초과할 수 있다. 게다가, 하위 범주에 속하는 '혼혈'과 '칼데오니아인'을 포함하여 '기타 다른 주민들' 범주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도 카낙족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 최근에 국내 상황이 발전됨에 따라 비-카낙족의 이탈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총 인구에서 카낙족이 차지하는 비율도 증가할 것이다.
뉴칼레도니아의 이웃 국가들은 평화 협정을 조용히 지지해왔지만, 그들은 프랑스령의 비-자치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섬 주민들의 이익에 대해 여전히 염려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1986년에 뉴칼레도니아 문제를 유엔 탈식민화 위원회로 가져가서, 그 영토와 프랑스의 조치에 대하여 유엔이 매년 정밀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태평양 제도 포럼 (PIF)은 누메아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는 사절단을 정기적으로 보냈고, 세 번째 국민투표의 유보에 대해 심각하게 표명하면서, 각각의 국민 투표를 감시했다.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The Melanesian Spearhead Group; 파푸아 뉴기니, 피지, 바누아투, 솔로몬 제도와 뉴칼레도니아의 FLNKS 독립 연합)은 특별히 카낙족의 독립을 지지하기 위해서 1980년대 중반에 형성되었다.
폭력의 분출과 함께, 그들의 침묵이 깨졌다. 수십 년 만에 호주의 최고위급 성명이 발표되면서,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호주가 뉴칼레도니아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뉴칼레도니아의 제도적인 미래를 형성하기 위해서 모든 당사자들이 건설적으로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PIF 사무총장 헨리 푸나는 폭동에 놀라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제3차 국민투표를 진행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PIF 의장이자 쿡 제도(Cook Islands) 총리인 마크 브라운은 뉴칼레도니아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가 '국민들의 자치권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인정하여' 이를 포럼에 포함시키고,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협조를 지지했다. 바누아투 총리이자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The Melanesian Spearhead Group)의 의장인 샬롯 살와이는 프랑스의 헌법 개정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평화 협정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상호 존중하는 사람이 이끄는 대화 사절단을 보낼 것을 촉구했다.
프랑스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에서 인정과 신뢰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0년대에 프랑스의 정책에 대한 섬나라 정부들의 본능적인 반대에 대응하여,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핵실험을 포기하였고 태평양 영토에 더 큰 자율권을 부여하였다. 지방정부와 국민을 존중하여 그렇게 시행하였다.
마크롱은 태평양에서의 확고한 주권을 토대로 인도-태평양 비전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인도-태평양 강대국으로서 프랑스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태평양 영토인 뉴칼레도니아에서 소수자인 토착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프랑스가 겸손과 존중에 의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태평양 섬 정부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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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메아 주재 호주 총영사와 하라레 주재 호주 고등판무관을 역임했다. 그녀는 호주 국립대학교 유럽 연구 센터의 객원 연구원이자 『남태평양의 프랑스: 권력과 정치』의 저자이다. 이 기사의 버전은 5월 18일 Le Monde에서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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