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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nse & Security

흑해 지역의 나토

지역 도시와 마을, 도로 및 철도, 지리적 위치가 포함된 흑해 지역의 상세한 편집 가능한 지도

Image Source : Olinchuk/Shutterstock

by Beqa Bochorishvili

First Published in: Apr.25,2023

May.30, 2023

이 논문의 초점은 흑해 지역의 서쪽을 대표하는 집단 안보 정책 조직인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나토)에 맞춰질 것이다. 이 논문은 흑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인 러시아의 역할을 고려하여 나토의 목표와 전략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냉전과 소련의 해체 이후 나토는 동쪽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및 리투아니아와 같은 국가가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냉전 시대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 조약 국가였던 체코, 헝가리, 폴란드와 발트해 지역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포함한 구(舊)소련 국가가 나토에 가입했다. 이러한 구(舊)소련 연방권 국가의 나토 가입은, 특히 나토 확대가 발트해 지역 국가로 까지 이어졌을 때 러시아를 화나게 했다. 러시아 연방 하원인 두마(Duma)의원들은 구(舊)소련 연방권 국가의 나토 가입에 발끈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국가 안보를 보장하고 발트해 지역에 추가 병력을 배치한다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이 지역에 군대 파견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러시아군의 파견에도 불구하고, 발트해 지역에서 나토의 여러 공중 및 특수 작전이 수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발트해 지역의 러시아 지휘 라인이 방해를 받고 기존 절차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나토의 확대 기간인 2009년에 일어난 흥미로운 일은 러시아가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단지 유럽 대륙에서의 나토 확대가 유럽을 불안정하게 하고 또 유럽 안보를 훼손한다는 러시아 관리들의 간접적인 진술이 있었을 뿐이었다. 

 

나토가 확대되는 각 단계마다 러시아는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나토 확대는 통합되고 강력한 유럽의 형성을 목표로 하였고 이는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제거를 그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나토와의 지리적 근접성을 배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나토가 동쪽으로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러시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토의 동진(東進)은 계속되었다. 2008년 나토는 (부쿠레슈티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소련 연방 공화국의 지도자인 고르바초프에게 나토가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토 확대 발표는 러시아에게는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러시아가 강력 반발한 주된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지정학적 열망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의 안보와 전략적 이익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었다.

 

흑해 지역은 항상 나토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흑해 지역은 카스피해, 지중해 및 에게해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인 동시에 중동과 연결하는 매우 전략적인 회랑으로 나토를 비롯한 이 지역 강대국의 이익을 두 배로 늘리는 데 기여했다. 냉전 종식 후 흑해 지역은 미국의 이익에 중요한 지역이 되었는데 그  구체적 이유는 세 가지이다: 1) 민주주의의 확산, 2) 안보 분야 협력, 3)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의 다양화. 반면 흑해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들의 민주적 발전 그리고 이들 국가와 서구 및 나토 국가 간 이해관계의 일치는 러시아의 이익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게다가 러시아로서는 자신을 배제한 채 흑해 지역을 이용해 유럽 대륙에서 에너지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 지역 국가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유럽-대서양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카라바흐(Karabakh), 압하지야(Abkhazia)와 같은 이 지역의 분쟁지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거나 유지했으며 또한 이러한 통제권을 조작 및 억압을 위해 사용했다. 요컨대, 흑해 지역의 다양한 분쟁지, 즉 그곳이 카라바흐(Karabakh), 압하지야(Abkhazia)-츠힌발리(Tskhinvali) 또는 크림반도 및 동부 우크라이나 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그 곳의 분쟁은 각각 러시아의 이익하에 관리되었고, 관리되고 있다.

 

흑해 지역에서 러시아와 나토 간 긴장이 조성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지역에 많은 수의 러시아 군대가 집중 배치되어 있고 그 결과 분쟁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지역은 러시아군과 나토군이 서로 긴밀히 접촉하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긴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경우 나토 회원국들은 공동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이 기존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전술 개발에 대해 선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흥미롭다. 나토가 흑해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터키와 터키의 최근 정책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1년 터키의 주도로 “Blackseafor” 라는 이름의 다국적 군사-해군 조직이 만들어졌다. “Blackseafor”의 회원국은 조지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루마니아, 터키였다. “Blackseafor”와 같은 모델을 만들어 터키는 흑해 지역에서 나토의 대표성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려 했다. 이러한 터키의 노력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현재 7대양 지역 중 흑해 지역에서 나토가 가장 약한 이유 중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는 시리아와 긴장관계에 있고, 그래서 터키에게는 나토의 방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터키는 흑해 지역의 안전보장을 확실히 하기 위해 러시아와 나토 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나토에 가입한 후 루마니아가 나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016년 바르샤바 나토 정상회담에서 나토 흑해함대 창설을 주도한 것은 루마니아였으며, 독일과 나토 본부, 그리고 미국으로 부터 모두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불가리아는 흑해에서 보다 자제하는 태도를 보이며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가리아 정책이 확 바뀌었고 2021년부터 불가리아는 흑해에서 “Breeze”로 명명된 나토 해군 훈련 작전의 수장을 맡았다. “Breeze” 작전은 2022년 7월 마지막으로 개최되었는데. 전투 및 지원 보트 24척, 군용기 5대, 헬리콥터 4대, 최대 1400 명의 군인이 참가했다. 이러한 훈련을 실시하는 데는 여러 가지 목표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흑해 지역에서 나토의 이익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흑해 지역에서 러시아의 지배력과 해양 독점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흑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유럽 안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6년 바르샤바 정상회담 이전에는, 나토가 흑해 지역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바르샤바 정상회담에서 나토 파트너 국가의 방어 능력 향상이 나토의 이익에 직접 부합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유럽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는 합의에 도달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잠재력 강화는 나토의 동쪽 전선을 강화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되고 이 전쟁의 미래/결과가 여전히 불확실해 나토의 미래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First published in :

Geo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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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qa Bochorishvili

Beqa Bochorishvilli는 Geocase 의 연구원이다. 그의 연구분야는 분쟁, 테러리즘, 국제안보이다. 그는 조지아 의회 외교위원회에서 보좌진으로 5년 이상 일했다. 그년 조지아 Tbillisi State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석사 학위 주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었다. 그는 영어, 러시아어, 불어에 능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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