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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질서는 특정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간 관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공통 이해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다. 또한 모든 주요 강대국은 서로가 각자의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비교적 공통된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도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다. 특히, 고인이 된 헨리 키신저 전(前) 미국 국무장관은 이에 대해 많은 글을 썼는데, 그의 생각은 서방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지정전략적 사고의 표준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가가 자신의 기본적 이익과 가치에 대한 존중을 서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보다 창의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분쟁은 항상 국가의 기본적 이익과 가치에 대한 공격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며, 우리는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적-정치적 대립의 사례를 통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설하면서 유럽 안보에 관한 서방과의 모든 합의에는 “부정직하고 사악한 서방의 행동에 대한 안전장치”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외교관들은 이미 이 주제에 대한 나름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보호 조치가 물리적 측면에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한 메커니즘의 본질이 무엇인지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러한 메커니즘은 부정적으로 나오는 서방의 행동에 대항하는 것이 분명하다. 첫째, 서방은 글로벌 외교 게임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러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서방의 물리적 능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 보호 조치는 국가(또는 블록)의 적대적인 행동을 바꾸도록 하거나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국제법 또는 조약의 누락 사항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을 보장하는 기술적 방법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이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핀란드가 NATO에 가입한 후에는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맹 자체는 냉전 이후 유럽에서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시도한 모든 공식적, 비공식적 원칙을 단순히 짓밟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합의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미국은 유럽 안보의 “엄격한” 틀을 기반으로 체결된 주요 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사실, 유럽 동부로의 NATO 확대, 즉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의 영토적 기반 확장은 재래식 무기 분야의 모든 협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유럽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선 러시아 외교의 검정된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국가들에게 적합한 보편적 질서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항상 상대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 전만 해도 주요 강대국 간에는 적어도 그들 각자의 내부 질서가 기반해야 할 원칙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있었다. 지금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중국 또는 다른 국가가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첫째, 모든 안보 질서는 필연적으로 기술적 성격을 띠며 도전과 위협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기반하지 않는다. 이것은 원칙에 대한 여지는 거의 없고 서방이 러시아의 핵심 이익을 위협할 수 없는 구체적인 매개변수에 대한 여지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말 러시아의 제안에는 이미 기능하는 유럽 안보 시스템의 이러한 원칙에 대한 여지가 거의 없는 특징에 관한 것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진지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된 이후에 우리는 유럽 안보 시스템의 원만한 작동을 위해 이러한 특징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많은 부분은 무책임한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미국의 이해가 얼마나 빨리 정착하는지에 달려 있다. 적어도 지금은 일부 미국 정치인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들린다. 미국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자신의 내부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후 구체적인 결정으로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둘째, 미래의 협정에 대한 신뢰와 같은 그런 개념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신뢰와 같은 그런 개념은 불행히도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정치 체제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전 행정부가 체결한 협정을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이를 쉽게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래서 서방에서는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지고 있다. 정책의 연속성은 늘 안정적인 외교 관계의 기반이었다. 게다가 현대 세계는 매우 다양하다.

신뢰는 러시아와 중국 간의 관계에서 처럼 양측이 주요 위협에 대한 공통 이해를 공유하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다. 러시아와 서방은 지금 그런 공통의 이해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주변 세계 전체가 미국과 그 동맹국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인들이 새로운 국제적 현실에 적응할 때까지는 그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유럽 안보 문제에 대한 신뢰는 서방이 어떤 합의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물리적 불가능성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서방이 그렇게 하려는 욕구가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셋째, 유럽 안보를 위한 법적 기반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상황은 오래 전에 유럽인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두 강대국인 러시아와 미국의 입장이 유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유럽과의 근접성은 전 세계의 관심사이며 유럽의 문제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가장 적절한 제안이 현재 중국, 인도, 브라질, 심지어 아프리카 국가에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유럽은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는 그 어떤 제안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흐름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유럽의 안보는 지역적 문제이자 동시에 글로벌 문제이다. 국제 사회는 서방이 자신의 의무를 어떻게 준수할 것인지 잘 지켜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적 측면에서 이전 국제적 관행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별 영토와 전체 국가의 완전 또는 거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난 30년 동안의 관행은 모든 국가가 자신의 방위 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권리와 같은 무거운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구(舊)소련의 발트 공화국, 핀란드 또는 현재 불행한 처지에 놓인 우크라이나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엘리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갈등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았다면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이 흘러 갔다면 그들은 아마도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하고, 세계 경제에 적응하며, 불안정의 중심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 안보를 결정하는 데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국가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물리적 능력을 박탈당해야 한다. 아마도 그런 경험은 미래에 더 많아 질 것이다. 왜냐하면 주권 국가가 강대국 간의 경쟁을 위한 전장(戰場)으로 변질 될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유럽 안보 시스템의 주요 기술적, 법적 매개변수는 아직 외교관들이 발명하지 못했고 정치인들은 합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상황을 더 이상 불확실한 상태로 둘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그것은 보편적 평화와 생존에 너무 위협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