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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란 국왕)와 아야톨라 치하의 이란의 핵 야망: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지만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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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in: Feb.14,2025
Mar.17, 2025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2002년 처음으로 그 전체적인 모습이 밝혀진 이후 서방의 정치 담론에서 늘 존재하는 골칫거리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미국, 유럽연합,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야망을 억제하기 위해 협상, 제재, 위협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사회의 조치가 이란의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이란 지도자들은 자국의 핵 활동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국제원자력기구가 요구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감독 강화를 실천하지 않았다. 이란이 핵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냉전 당시 이란이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다 멀리보면 그 보다 10년 이상 전인 1959년 미국이 이란에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했을 때였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란은 민간 핵 프로그램과 함께 자국을 위한 핵무기 제조 능력 취득을 추구해 왔다. 오늘날의 아야톨라와 마찬가지로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샤 (이란 국왕)는 이란의 핵무기 제조 능력 취득 의도를 부인했다. 이란은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NPT)의 서명국으로서의 권리에 따라 핵 에너지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의 핵 능력 추구의 동기와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샤(이란 국왕)와 아야톨라 두 이란 정권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핵 추구에 대한 진실을 알아볼 수 있다.
이란 국왕의 의도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이란이 핵 강대국이 되려는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남아시아와 중동 사이에 위치한 자국의 지정학적 역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샤(이란 국왕)는 자신의 핵 프로그램 추구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 능력 추구 노력에 대한 대응으로 생각했다. 그는 1974년 6월 이란의 국가 안보를 위해선 핵 억지력을 보유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소규모의 국가가 불안정하고 초보적이지만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면, 모든 나라도 자국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똑같이 행동하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란 국왕은 국제 사회를 달래기 위해 “하지만 나는 그것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은 한때 제국을 이루었던 이란이 정교한 무기에 대한 욕심이 커지고 이란 국왕이 과거의 역사적 패권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을 의심했다. 이란 국왕이 1974년 6월 프랑스 기자에게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얘기했을 때 이란이 핵무기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인도가 불과 한 달 전 핵무기를 가졌던 것처럼 이란이 언젠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란 국왕은 “의심할 여지 없이, 생각보다 빨리”라고 대답했다.
핵무기에는 정교한 타겟팅 및 전달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수년간의 국제제재로 인해 이란 해군과 이란 혁명 수비대는 해상 핵 전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체적 힘으로 군 혁신을 이루어내야 했다. 그러나 1975년 1월 이란 국왕은 해외로 부터 핵 기술을 구매하려고 했다. 프랑스와 핵 잠수함 거래를 추진한 이란 협상가들은 미국 행정부가 “미국이 핵 잠수함을 판매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국무 장관인 헨리 키신저는 프랑스 대통령실 사무총장인 피에르 브루살레트로 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이를 우려했던 키신저는 이란의 핵 잠수함 거래가 “상상할 수 없다... 99.9% 확신한다”고 반복해서 대답했다. 이란이 프랑스 핵 잠수함을 구매하면 1972년 5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이란 국왕이 체결한 수십조 달러 상당의 미국-이란 간 무기 협정을 위반하게 된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에 핵 무기를 제외한 무기와 그 관련 기술 판매를 허용했다.
1975년 5월 이란 국왕이 미국으로 부터 랜스 지대지 미사일 6개 대대를 구매하려 했을 때 또 다른 경고가 미국 정부로부터 나왔다. 제럴드 포드 미국 행정부는 키신저 국무 장관을 통해 이란의 구매 계획을 막았다. 미국 국방부는 랜스를 재래식 탄두와 함께 사용하면 비용 효율적인 무기가 되지 않는다며 이란을 막고 나섰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에 대해 미국 의회는 이란의 랜스 미사일 구매를 이란의 핵 개발 계획과 연관시키며, 이란 혁명 수비대가 핵 탑재물을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을 생산하고 구매하려고 하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무기 판매에 적극 반대하였다.
제안과 반대 제안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져가도 이에 굴하지 않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이란 국왕은 미국 업체로부터 6~8개의 원자로를 인수하고 이어 프랑스와 독일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원자로를 구매하기 위해 제안했다. 그의 목표는 원자력 에너지를 통해 국내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고 이란의 남는 석유를 에너지에 목마른 외국 국가에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는 모든 국가에게 윈(win)-윈(win)을 가져다 줄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미국 정부의 농축 핵연료 생산이 최대 용량에 도달하기 시작했고 추가 용량을 추진하기 위해 민간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계획했을 때 이란 국왕은 30% 지분을 매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른 이해 당사자들이 상당한 자금을 이에 투자하는 데 주저했던 만큼 이러한 이란의 제스처는 중요했다. 이란은 프랑스 원자력 위원회에 11억 8천만 달러를 대출하고 프랑스 Eurodif 우라늄 농축 공장의 10% 지분을 인수할 예정이었다. Eurodif 우라늄 농축 공장 지분 인수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란은 여전히 프랑스-이란 컨소시엄을 통해 간접 투자자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당시 포드 행정부(1974~1977) 시절 미국에서는 핵무기 확산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었고 그 결과 이란은 다국적 대기업과의 핵 연료 재처리 시설 구매를 포기하거나 또는 이란 원자력 시설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정 미국 법 조항에 동의해야 했다. 이란 국왕은 이란이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 회원국이기 때문에 민간 목적으로 핵 기술을 사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미국의 조건과 조항이 차별 대우라며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2009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의 이란에 대한 핵 제안이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아야톨라의 승인을 받지 못했을 때와 유사하고, 전반적으로는 이란의 핵 시설에 대한 서방의 감독, 감시 조치 실패의 역사와도 이상하게도 유사하다.
국제원자력기구, 미국, 유럽 연합은 이란의 20% 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향후 수년간 이란의 의료 연구용 원자로의 운영에 필요한 용량을 훨씬 초과한다고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포드 행정부 시절 미국 국무부는 이란 국왕이 계획한 23,000메가와트의 발전 용량이 이란의 국내 에너지 수요 예측치를 훨씬 넘어섰다고 보고했다. 미국 보고서는 이란의 동기가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결론지었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욕구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그 결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1978년 이란 국왕과 이 문제에 대한 임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이란 농축 우라늄 재처리 문제에 대한 양국 간 협상은 계속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이란 국왕이 이 합의를 잘 지켰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 해 이슬람혁명에 의해 축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 국왕이 권좌에 남아 미국의 동맹국이 되었더라도 이란은 서방과,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핵 프로그램을 놓고 대립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란 국왕의 핵 무기 추구에 대한 가려진 진실은 그를 섬긴 이란 관리들에게는 그 목표가 분명했다. 현재 서방 정부는 이란의 아야톨라의 핵 무기 추구의 최종 목표에 대해 의심을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란 법무 장관 아사돌라 알람은 1975년 11월 29 일기에 이란 국왕의 계획에는 “그는 부인하지만 아마도 핵 무기 제조도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란 국왕의 수석 원자력 고문인 아크바르 에테마드는 팔레비 왕조가 축출된 후 인터뷰를 가졌을 때 보다 확실하게 말했다. “나는 이란 국왕의 계획 중 일부가 [핵] 폭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항상 의심했다.”
아야톨라의 목표
1980년과 1988년 이라크가 일으킨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엄청난 사상자를 낸 (군인 및 민간인 모두) 이란의 지도부는 국가와 정권의 생존이 최우선 과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 아야톨라들은 이전의 이란 국왕과 마찬가지로 핵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란이 이라크와 적대 행위를 종식시키기로 동의한 후, 아야톨라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는 핵 프로그램 재개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핵무기와 기타 대량 살상무기를 금지하는 이슬람의 종교적 이상조차도 버려졌다. 이란 의회 의장으로 재임하던 라프산자니는 1988년 10월 이란 혁명 수비대에서 연설하면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한 무기의 필요성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매우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학, 세균 및 방사능 무기를 공격 및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완벽하게 대비해야 한다.”
1988년 후반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자 이란 혁명 수비대를 지휘했고 현재 국가 지도 위원회의 비서로 재직 중인 모흐센 레자이는 당시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편지를 써서 이란 혁명 수비대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도록 종교적 지지와 행정 허가를 요청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이란의 총리를 지낸 미르 호세인 무사비는 레자이의 요청과 라프산자니의 핵 캠페인을 지지했다. 이란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처음에는 핵 개발에 반대했지만, 이란의 혁명 창시자가 “우리는 원자력 시설을 설치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란은 핵 무기 개발을 위한 초보 단계를 시작했다.
이후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이란 대통령을 지낸 라프산자니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향한 노력을 완전히 재개하도록 명령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한 세예드 모하마드 하타미와 2005년부터 대통령으로 재임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라프산자니, 레자이, 무사비가 세운 원자력 에너지 및 핵 무기 프로그램 추진을 계속 이어갔다. 하타미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2003년 우라늄 농축을 중단했지만, 2004년 이란 의회 선거를 통해 이란 정계에 강경파가 다시 부상했고 핵무기 개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그 후 20년 동안 이란은 이슬람혁명 이전의 기술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핵무기 아버지로 불리는 A. Q. 칸의 불법 파키스탄 핵 네트워크, 북한, 중국을 포함한 외국의 핵 기술에 눈을 돌려 이란 내 핵 역량을 꾸준히 구축했다.
정치적, 이념적 측면에서 자기 보존, 민족주의, 서방에 대한 의심이 합쳐져 많은 이란 지도자들이 핵 야망을 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전의 팔레비 왕조처럼 이란은 원자력 에너지나 핵 무기 제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2009년 후반 아마디네자드가 서방과 핵연료 교환 협정을 맺으려 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매우 교훈적이다. 무사비는 “제네바에서의 논의는 정말 놀랍다... 수천 명의 [우리] 과학자들의 노고가 망가질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한때 대선 후보였던 세예드 메흐디 카루비는 아마디네자드 정부가 “국가적, 종교적 이익을 지키기보다는 국가 정책을 바꾸려 한다”고 비난했다. 다른 정치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이란 의회 의장인 알리 라리자니는 “서방인들은 우리의 핵 권리를 속이려 하고 있다” 라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 내 전반적으로 친(親)핵무기 감정이 높다는 것을 감지한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타협에 대해 강열한 혐오감을 표명했다: “우리가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들[미국과 그 동맹국]이 우리 등 뒤에 단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란의 과거를 흉내 내는 현재의 이란이 더 위험
하지만 이란 정부는 평화적 목적을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추구한다며 핵 무기 개발을 지속적으로 부인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만들 의도도 없다”는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설득력 없는 말은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 생각이 없다”라는 마지막 이란 국왕이었던 팔레비와 그의 외교관들의 말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국내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영국, 이스라엘에서 싹트는 이란을 향한 폭풍을 가라앉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실제, 핵 에너지에 대한 평화적 의도에 대한 주장과는 달리, 하메네이는 “이란은 동일한 수준의 힘으로 적들에게 대응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반복적으로 서방을 위협했다. 과거 이란 국왕도 “다른 비핵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면 이란 정권도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修辭)법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란 국왕은 미국, 유럽,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또는 다른 국가를 선제 또는 보복 공격으로 위협하지 않았고 테러리즘을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 국왕과는 달리 이란이 현재 직면한 압력의 대부분은 현 이란 지도자들이 취한 서방과의 대립적 입장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핵무기는 외부의 적을 억제하고 국내에서 권력을 강화하려는 이란 국왕의 사상과 잘 맞았고,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을 운영하는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들이 핵 프로그램을 계속 강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1973년과 1979년 사이에 이란 국왕이 핵 개발을 은폐한 패턴이 어떤 지표라면, 이란의 현재 지도자들이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 의무를 이행할 가능성은 낮다. 심지어 이란 국민들에게 큰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하고 전 세계적에 엄청나 당혹감을 안겨주더라도 이들은 핵무기를 개발하려 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이란 내부의 폭정이 시아파 성직자들의 롤모델이 된 지난 왕정과 는 달리,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신권 통치의 적이라고 여겨지는 국가와 개인을 대상으로 국경 너머에 까지 위협과 폭력을 행사해 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란 국왕과는 달리 현재 이란을 통치하는 무슬림 신권 정치인들은 “세계를 선도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다른 국가에 편협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수출하려고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무슬림 신권 정치인들은 “핵 지식과 기술을 공유한다”고 말하면서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을 더욱 훼손하고 심지어 세계적 안정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무력으로 권력을 잡고 해외에 테러를 수출해 세계 무대를 지배하려는 아야톨라들에게 핵무기는 국제 적대국, 외부에서 부과된 정권 교체 압력에 대한 궁극적인 억제력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란 국왕이 1970년대에 했던 것처럼, 이란의 현재 지도자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핵 무기 기술 획득을 이란을 국제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기적인 합리적인 결정으로 본다.
이란의 이웃인 아랍 국가 및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서방 국가들은 이란 국왕의 동기를 경계했다. 이제 그들은 아야톨라의 의도를 완전히 두려워한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은 자신이 이란을 공격할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면 이란의 핵 계획을 몇 년만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고자 하는 국가들이 직면한 기본적인 딜레마는 합리적인 선택이 항상 냉정한 의사 결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의 이란 국왕과 마찬가지로 아야톨라는 핵 무기 기술을 지지하는 근거의 일부로 국내 및 국제 전선에서 의 정치적 편집증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란 국왕의 프로그램이 정권 교체를 통해 중단된 것과 달리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핵 문턱에 도달하고 이를 넘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이란에서 새로운 정부가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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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McGlinchey는 E-International Relations의 편집장이자 발행인이며 UWE 브리스톨의 국제 관계 수석 강사이다. 그의 저작물에는 국제 관계 재단(Bloomsbury 2022), 국제 관계(2017), 국제 관계 이론(2017) 및 샤의 이란을 향한 미국 무기 정책(Routledge 2021, 2014)이 포함된다.
Jamsheed K. Choksy는 인디애나 대학교의 해밀턴 루가 국제 및 국제 연구소의 이란 및 중앙 유라시아 연구 석좌 교수이자 미국 Title VI 내륙 아시아 및 우랄 국가 자원 센터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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