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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현실 속의 헤즈볼라 - 멸망인가, 아니면 블랙 스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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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in: Mar.04,2025
Mar.24, 2025
레바논의 급속한 국내 정치 변화로 권력 균형이 깨지고 주요 정치 세력의 입장을 재평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지역 긴장이 잠시 멈춘 가운데, 오랫동안 레바논에서 지배적인 군사 및 정치 세력이었던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논쟁이 수많은 언론과 출판물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헤즈볼라 미래에 대해 일치되는 견해는 없다. 일부 전문가는 헤즈볼라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반대로 현 상황이 헤즈볼라의 재편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헤즈볼라가 무엇을 대표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조셉 아운이 레바논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이어 나와프 살람이 총리로 임명된 이후, 레바논 정치는 새로운 재편의 변화를 계속 겪고 있다. 외교 접촉 강화, 국경 지역의 긴장 고조, 예상치 못한 행정 결정 - 이 모든 일들은 현실과 일치하는 새로운 균형을 찾는 노력을 반영한다. 전쟁과 정치적 변화로 약해진 헤즈볼라는 이러한 변혁적 과정의 중심에 서 있다.
헤즈볼라의 피루스적 승리
2024년 11월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종료되면서 헤즈볼라가 입은 피해의 범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헤즈볼라의 사무총장인 셰이크 나임 카셈이 시오니스트 적에 대한 “위대한 승리”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사학은 냉엄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상당히 평가절하된다. 사실, 헤즈볼라의 현 지도자가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 리더십하에서 30년 이상 맡았던 부(副)사무총장이라는 오랜 역할에서 현재의 위치로 승진한 것은 전쟁의 주요 결과, 즉 헤즈볼라 조직 내부의 상당한 손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헤즈볼라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 중 하나는 대부분의 리더십이 물리적으로 제거된 것이다. 헤즈볼라가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지원하는 데 관여한 이래 헤즈볼라 조직 내의 주요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의 표적이 되어 살해되었다. 그 중에는 저명한 라드완 부대 사령관인 위삼 타윌, 나스르와 아지즈 특수 부대의 수장인 탈리브 압둘라와 모하메드 나세르, 헤즈볼라 로켓 프로그램 감독자이자 사무총장의 수석 군사 고문인 푸아드 슈크르가 있다. 또한 헤즈볼라의 주요 군사 기구인 지하드 위원회의 일원인 이브라힘 아킬도 제거되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남부 교외인 다히예에 공습을 가한 후 헤즈볼라의 오랜 지도자인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공격으로 또 다른 지하드 위원회 위원인 알리 카라키와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인 압바스 닐포루샨 장군도 목숨을 잃었다.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아마도 헤즈볼라 집행 위원회 위원장인 하셈 사피 알딘이 제거되자 훨씬 더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헤즈볼라의 주요 행정 기관인 슈라 위원회가 3년마다 두 명의 사무총장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명은 대행이고 다른 한 명은 “예비 후보”이다. 이 선출 절차는 1990년대에 헤즈볼라의 두 번째 지도자인 아바스 알 무사위가 암살된 후 사무총장이 갑자기 제거될 경우 내부 불화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하셈 사피 알딘은 정확히 그런 후계자로 지명되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이 비상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물론 헤즈볼라가 입은 손실은 고위 지휘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북부 화살 작전이 시작되기 전 헤즈볼라의 일반 대원 사상자 수는 약 400~500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제3차 레바논 전쟁이 끝날 무렵 아랍과 이스라엘 소식통은 이 숫자가 3,000~4,000명으로 증가하여 헤즈볼라 무장 병력 50,000명 중 약 6~8%를 차지했다고 보고했다(미국 의회 추산). 이 수치에는 치명적이지 않은 부상자, 즉 부상을 입어 더 이상 대원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된 부상자 상당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해석함에 따라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적 행동의 자유”가 완전히 허용되기 때문에 휴전 협정이 발효된 후에도 헤즈볼라 무장 대원의 사상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스라엘 군은 헤즈볼라 무장 대원을 숨겨 주거나 헤즈볼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표적에 대한 공습 및 미사일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2024년 12월 말까지 이스라엘 군의 휴전 협정 위반 사례는 이미 300건을 넘었다. 이에 대해 레바논에 주둔 중인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은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헤즈볼라의 전후 상황에서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이 된 미사일 무기고의 현재 상태이다. 2024년 3월 현재, 헤즈볼라는 100,000~200,000개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대부분은 단거리 로켓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평가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현재 남은 무기는 전쟁 전 비축량의 20%~50%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립 분석가들은 이 추정치의 상한선에 동의한다.
따라서 제3차 레바논 전쟁이 헤즈볼라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신속하고 기적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희망은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악화되는 지정학적 환경과 레바논 내에서 헤즈볼라에 대한 내부 압력이 커지면서 헤즈볼라 조직이 회복을 위한 자원을 어디에서 찾을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헤즈볼라를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시기상조일 것이다. 이스라엘 언론조차도 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헤즈볼라가 패배하지 않았다는 대담한 기사를 싣는다. 모든 정치 조직의 가장 귀중한 자산은 사람들이고, 이 점에서 헤즈볼라는 여전히 강력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객관적인 레바논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시아파 커뮤니티 내에서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가 지속적으로 높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일부는 헤즈볼라의 입장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아파 밖에서는 헤즈볼라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노정되고 레바논에 대한 외부의 압력 증가에 직면하여 시아파가 희생양이 될 술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집단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같은 배에 탔다는 것을 깨닫고 전통적인 지도부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오늘날 공은 헤즈볼라의 코트에 있다. 헤즈볼라는 지지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대한의 책임감과 정확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의 핵심 초점은 헤즈볼라와 그 동맹 세력이 여전히 중요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새 정부와의 협력이 될 것이다.
새 내각: 시니오라를 기억하며 2005년을 되살리자
2월 8일 토요일, 레바논의 나와프 살람 총리는 새로운 정부 구성을 완료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를 “개혁과 구원의 정부”라고 불렀다. 이 구성 과정은 26일이 걸렸는데, 이는 21세기 레바논의 정치 역사에서 거의 기록에 가깝다. 내각이 이 보다 더 빨리 구성된 유일한 때는 2005년으로, 당시 총리 푸아드 시니오라가 삼나무 혁명이후 전국적인 인재 등용 속에서 19일 만에 정부를 구성했다. 사실, 이러한 빠른 속도는 레바논의 정부 및 관료 체제가 심연으로 빠지기 직전에야 “숨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위기적 상황을 증명한다.
내각은 정당과 공식적으로 무관한 24명의 인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향후 선거에 참여할 의도가 없다. 살람 총리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정부 내 정치적 마찰을 줄이고 효과적인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레바논의 전통적인 정당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장관들은 각자의 포트폴리오에만 집중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총리와 정치 세력 간의 협의 과정은 이 전략의 효과를 다소 희석시킨다. 내각에 대한 의회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력한 정당은 내각 임명에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구성은 개혁 지향적인 조셉 아운 대통령과 나와프 살람 총리의 개인적 비전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레바논에서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 최고 지도자들은 10명의 장관 후보를 직접 지명했고, 다른 12명은 다른 정치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파멸에 대한 광범위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종종 “시아파 거장”이라고 불리는 헤즈볼라-아말 운동 듀오는 각각 자신의 조직에서 2명씩, 정부에서 신뢰할 수 있는 4명의 대표를 확보했다. 행정 개발 담당 장관으로 할당된 또 다른 시아파 인물은 총리와 아말 운동의 지도자인 나비흐 베리 의장 간의 타협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최종 평가에서 이는 여전히 정부 수반을 대신하여 이루어진 “비당파적” 임명으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내각에 다수의 시아파 장관이 포진한 것은 헤즈볼라와 아말 운동의 지속적인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들 “시아파 듀오”의 정치적 영향력은 단순히 총리가 행정부에서 그들의 대표권을 크게 제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나와프 살람 자신은 적어도 헤즈볼라와 아말 운동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데 다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아말 운동은 이 운동의 일원인 전 의원 야신 자베르에게 재무부 장관직을 부여함으로서 이 직책에 대한 자신들의 오랜 독점권을 유지했다. 재무부 장관은 총리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임명에 앞서 격렬한 논의가 있었다. 예산 배정이 필요한 모든 정부 결정은 재무부 장관의 서명이 필요하므로 그의 승인이 없으면 모든 정부 이니셔티브가 효과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 자베르는 자신의 지위를 결코 남용하지 않겠다고 재빨리 확언했지만, 서방과 걸프 군주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아운 대통령과 살람 총리는 정부 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주요 직책이 친(親)이란 헤즈볼라에 가까운 인물의 손에 남아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가능성이 분명하다.
동시에, 이로써 시아파 듀오에 대한 방해 메커니즘이 무력화된 것으로 보인다. 현 내각에는 헤즈볼라와 아말운동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시아파 장관이 포함되어 있다. 즉, 시아파 듀오 출신 4명의 장관이 정부의 정통성을 비난하고 정부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하면 행정 개발 담당 장관인 파디 마키가 그 직위에 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시아파 대표의 부족과 내각의 불법성에 대한 주장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국가 지도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상징적인 양보가 아니었다. 역사적 선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푸아드 시니오라 정부(2005-2009)의 임기 동안 헤즈볼라와 아말운동은 시아파 인사가 핵심 내각에 없어 정부가 대표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시아파 장관 5명을 모두 내각에서 철수했다. 당시 헤즈볼라와 그 동맹은 야당(즉, 자신들)이 소위 내각 멤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연립 정부 구성을 요구했다. 레바논의 정부 결정에는 3분의 2의 다수결이 필요하다. 즉, 내각의 3분의 1 이상을 통제하는 정치 세력과 1명의 장관이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필요한 경우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런 위기는 2008년에 정점을 찍었고, 헤즈볼라와 친정부 세력 간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여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양측 간 갈등은 결국 해결되었지만, 레바논 정치에서 경고의 선례로 남아 있다.
그 이후, 그리고 현재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모든 레바논 정부는 “정부 결정을 차단할 수 있는 제 3자”를 보유한 한 정치 세력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왜냐하면 이 3자는 3분의 2의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내각의 결정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학 관계로 인해 레바논은 2009년 이후 4번의 정부 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와프 살람이 새로운 내각에서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기로 한 결정은 신중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또 다른 행정부의 붕괴 가능성을 크게 줄였다. 한편, 재무부 장관은 고도로 숙련된 정치 전술가인 나비 베리의 손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이 너무 높아지고 현재의 정치 질서가 붕괴로 이어지기 시작할 때에만 사용될 것이다. 이들 시아파 듀오는 이유 없이 정부에 반대할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에는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방어할 수 있는 영향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동시에 이 시아파 듀오의 주요 국내 정치적 반대 세력인 레바논 군단(LF)과 카타이브당은 총 5개의 장관직을 확보했다. 또한 내각에서 2명의 장관직은 전통적으로 드루즈파인 진보사회당(PSP)의 후보에게 돌아갔는데, 이 당은 지역 사회의 최상의 결과를 추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정치적 책략을 꾸며 왔다. 이 당의 사실상의 지도자인 왈리드 줌블라트는 정치적 분위기에 편승해 때로는 헤즈볼라를 비판하고 또 다른 때에는 그와 연합하는 행동을 번갈아 해왔다. 또 다른 장관직은 아르메니아 혁명 연방(ARF) “다쉬나크츠툰”의 레바논 지부 대표인 누라 바이라크다리안에게 할당되었다. 다쉬나크는 오랫동안 3월 8일 연립 정부의 주니어 파트너였으며 기독교 자유 애국 운동(FPM)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주목할 점은 자유 애국 운동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단 한 명의 내각의 장관직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푸아드 시니오라 정부 때 마지막으로 본 상황이다. 특히 상징적인 변화는 자유 애국 운동의 전통적 거점이었던 에너지부가 레바논 군단(LF)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에 논의했던 자유 애국 운동과 헤즈볼라 간 분리는 대체로 새로운 정부에서 시아파 세력의 고립을 결정지었다. 강력한 기독교 동맹 없이 기독교 세력이 내각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마라다 운동도 과도하게 방치되었다). 자유 애국 운동이 내각에 불참함에 따라 자유 애국 운동 지도자 Gebran Bassil은 야당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 의향을 표명했지만 동시에 총리의 행동에 대해선 심각한 불만을 표명했다. Bassil에 따르면 나와프 살람은 기독교와 수니파 무슬림의 이익을 희생하여 내각 구성에 대한 영향력을 시아파와 드루즈파 세력에 더 많이 부여했다. 자유 애국 운동이 신 정부에서 배제된 것에 대한 그의 불만은 의회 신임 투표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의회의 세션 동안 Bassil은 총리가 내각 임명에 대한 협의에서 한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그 결과, 자유 애국 운동은 나와프 살람 정부에 대한 신임 투표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총리에 대해선 “그가 그럴 자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회 신임 투표에서 Gebran Bassil과 그의 지지 세력인 Strong Lebanon 블록은 소수파로 남겨졌다. 총리가 발표한 성명은 조셉 아운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한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법치와 주권을 회복하고, 정부 기관을 개혁하며, 유엔 결의안 1701을 이행하기로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의 선언에는 헤즈볼라를 향한 두 가지 명확한 경고 신호가 포함되었다. 나와프 살람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를 결정할 권한은 국가에만 있어야 하며 국가만이 무기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가져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사법 독립과 관련해선 그의 선언은 특히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건에 대한 조사와 관련하여 사법부를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시급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아말 운동의 고위 간부 조사 과정에서 그를 소환하여 심문을 시도한 타렉 비타르 판사의 업무를 “시아파 듀오”가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헤즈볼라에 대한 충성 의회 블록의 지도자인 모하메드 라드는 연설에서 몇 가지 정책 권고안을 제시하면서도 정부에 대한 가혹한 비판은 삼가고 정부에 대한 헤즈볼라의 신뢰를 표명했다. 다른 의원들의 연설은 정부의 의제에 대한 신중한 낙관주의를 반영했는데, 그들은 그들의 지지가 조건부이며 약속된 개혁을 향한 구체적인 단계에서만 정부의 의제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 연설의 공통점은 예금자와 은행 부문의 문제를 해결하고, 선거 개혁과 미래 선거를 제때 실시하며, 침체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두 가지 호소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을 종식시키고 모든 무기를 국가에 넘길 필요성이었다. 결국 95명의 의원이 내각에 대한 신임투표에 찬성했고, 12명이 반대했으며, 4명이 기권했다.
전반적으로 새 레바논 정부는 매우 흥미롭고 따라서 전도유망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여성과 학계 출신이 내각에 임명되어 높은 대표성이 반영되었다는 측면과 3분의 1의 차단 의석의 부재와 최고 지도자가 임명한 장관이 많다는 형식적 측면에 주목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매우 균형 잡히고 잘 구성된 내각이라는 인상을 주며, 이는 국가를 재구조화하려는 야심찬 과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내각에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신호를 준다. 하지만 현 내각은 2026년 5월 의회 선거까지만 존재할 것이며, 그때 레바논의 권력 지형이 확립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내에 내각이 설정된 모든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듯하지만 변화의 시동을 걸기에는 적합한 기간인 듯하다.
그리고 헤즈볼라와 새 대통령과 총리가 대표하는 새 레바논 지도부가 모든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무언가가 있다.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냉정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에서는 모든 것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스라엘 스타일”로 후퇴: 이스라엘 방위군은 작별 인사를 하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휴전 협정은 2월 18일에 공식적으로 만료되었고, 그때까지 이스라엘 방위군은 레바논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다시 연장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보도를 감안할 때, 그 과정이 놀라움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 휴전 협정 마감일 하루 전 이스라엘 군 관리들은 임시 조치로 이스라엘 방위군이 5개의 전략적 요충지에 주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협정에 의해 설립된 휴전 감시 위원회의 주요 당사자인 미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재빨리 지지했다. 한편,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포함한 레바논의 모든 정치 지도부는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對)레바논 전략은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 위협을 강력하고 타협 없이 억압하겠다는 논리에 머물러 있다. 실제 이스라엘군의 철수 “지연”과 주둔의 지속은 확립된 휴전 협정의 전체 의미를 평가절하하여 휴전 당사자 중 한 쪽이 이를 위반할 “합법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이에 대응하여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리타니 강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레바논 남부의 5개 거점이 이스라엘 방위군의 장기 점령 지역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바논 영토 깊숙히 이스라엘 국경 주변의 구릉 지형을 통제하면 이론적으로 이스라엘의 국경을 보호할 수 있는 완충 지대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방위군이 레바논 영토에 머무를 계획이 없다면, 언제까지 이스라엘 방위군이라는 군사적 존재가 필요한지 명확하지 않다. 합의에 따라 이 영토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는 레바논 군 부대가 통제하도록 되어있다. 게다가 이러한 조치의 일시적 성격에 대한 진실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국경 간 긴장의 육지적 요소가 결코 주된 우려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주된 위협은 항상 시아파 무장 집단의 미사일에서 비롯되었다.
최근 성명에서 헤즈볼라의 사무총장인 셰이크 나임 카셈은 예정대로 10월 18일 이후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완전히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레바논 정부에게도 타협 없이 이를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그는 그렇지 않으면 헤즈볼라가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점령자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의 발언의 절제된 어조((평소의 반(反)이스라엘적 수사(修辭)적 배경에 반하여))와 헤즈볼라의 언어로 된 헤즈볼라 지도자의 말에서 특별한 위협이 없다는 것은 신중한 성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헤즈볼라는 현재 이스라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행동을 추진할 자원이 없다. 오늘날 의도적으로 이스라엘과 대립에 돌입하는 것은 탱크에 새총을 던지는 것과 같다. 게다가 대립 확대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의 핵심 구성 요소이며 이미 난민이 된 남부 레바논의 주로 시아파 인구를 위험에 빠뜨릴 위험이 크다.
헤즈볼라의 영향력 약화
레바논 영토의 탈(脫)점령지화라는 과제 이외에도 최근 몇 달 동안 레바논 국내 및 외교 정책은 다른 중요한 사건으로 얼룩지워졌다. 이 모든 사건은 레바논의 정치 지형이 어느 정도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헤즈볼라에게 불리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상되는 변화는 외교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조건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선출된 레바논 대통령의 이름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보호와 관련이 있다.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동맹(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은 수년간 레바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해 왔으며, 이란의 영향력의 주요 지휘자는 헤즈볼라이다. 올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장관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베이루트를 방문했다. 그는 대통령과 총리의 개혁 과정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몇 주 후, 미국 대통령의 중동 담당 특사인 모건 오르타구스가 베이루트를 방문했다. 하지만 모건 오르타구스의 방문은 훨씬 큰 소동을 일으켰다. 레바논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다윗의 별 모양의 반지를 낀 그녀에 대한 분노가 크게 일었고 모건 오르타구스와 헤즈볼라의 동맹인 나비흐 베리의 대화에서는 이스라엘을 “절대 악”라고 부르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 미국 특사의 방문이 레바논 내각 구성 발표 전날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헤즈볼라는 어떤 형태로든 새 레바논 정부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발언은 새 장관 명단이 공개된 후에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또 다른 큰 사건은 레바논에 다시 “미래”가 있다는 발표였다. 무스타크발(아랍어로 “미래”) 운동의 오랜 지도자이자 前 총리인 사드 하리리는 아버지이자 총리이기도 한 라픽 하리리의 암살 20주년을 맞아 3년간의 활동 중단 후 정계 복귀를 발표했다. 2022년 총선 전 그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무스타크발 운동을 해체했다. 이 조치로 수니파 세력은 분열되었고(따라서 약해졌음) 레바논 정치에서 수니파 세력은 지휘권을 잡을 명확한 지도자가 없었다. 이는 무스타크발 운동이 오랫동안 수니파 세력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발생했고, 이제 사드 하리리는 자신의 정치 복귀를 위한 최고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의 정계 복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에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는데, 그 자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출신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신민이기 때문이다. 알 사우드 가문과 그의 인연은 그의 아버지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결코 비밀이 아니었지만, 2017년 사건 이후 그 들 관계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는 또한 에미레이트 엘리트, 특히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흐얀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몇 주 동안 가장 중요한 뉴스는 레바논 정부가, 특히 베이루트의 라픽 하리리 국제공항에 이란 민간 항공기의 착륙을 금지한 것이다. 이란 항공기 중 하나가 착륙을 거부당한 후,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시위를 시작하여 이 나라의 유일한 국제공항으로 가는 도로를 막았다. 레바논 정부가 이 조치를 처음에는 2월 18일까지, 이제는 무기한으로 연장한 것은 이란이 항공기를 통해 헤즈볼라에 자금을 보내고 있다는 정보를 이스라엘 방위군이공개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 사무총장인 셰이크 나임 카셈은 이 사건 이후 성명에서 이란 항공기가 착륙할 경우 이스라엘이 “활주로를 공격”할 것이라는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레바논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언급하며 레바논 정부 지도부를 맹렬히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명령을 준수하는 레바논 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헤즈볼라의 힘이 약해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며 레바논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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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의 공개 장례식은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였다. 무의식적으로 복잡한 레바논 정치의 내부 과정이 주제가 되었다. 수천 명의 장례 행렬 위로 이스라엘 전투기가 비행하고 초대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대통령과 총리가 장례식에 불참한 것은 논평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헤즈볼라의 사무총장인 셰이크 나임 카셈이 장례식 연설에서 말했듯이, “국가 책임”의 시간이 왔다. 헤즈볼라는 의도적으로 무대 뒤로 물러나(하지만 떠나지는 않았음) 현재 순간의 민감성과 자체적인 어려움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새로운 현실이 이미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상황 전환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다소 예측 가능한 상황(레바논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면)은 2026년 의회 선거 이후에야 달성될 것이다. 내년쯤 그 길로 가는 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선거는 종종 놀라움을 선사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헤즈볼라가 갈등을 최소화하고 새 정부와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굽히지 않는 대화를 선택한 노선이 균형 잡힌 듯하다. 현재 헤즈볼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세 가지이다. 첫째,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시아파 인구가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헤즈볼라 지도부가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정도는 이 그룹이 얼마나 확고하게 발판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제2차 레바논 전쟁 이후와 마찬가지로 헤즈볼라는(Jihad al-Binaa 와 같은 기구를 통해) 피해 지역의 주택 재건과 목표 보상금(임대료) 지급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캠페인에 수천만 달러가 지출되어 거의 전적으로 이란에 자금을 의존하고 있는 헤즈볼라 조직은 이미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문제와 다른 차원에서 중기적으로 이란의 입장이 중요하다. 둘째, 헤즈볼라에게 있어 군축이라는 주제는 가까운 미래에 특히 중요해질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레바논의 최고 지도부에 의해 개략적으로 설명되었으며, 레바논 정부가 의회에 선언한 내용에서도 언급되었고, 그 후 상당수의 의원들이 연설에서 이를 지지했다. 이러한 발언이 허세가 아니라 레바논의 국제적 이미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지만, 이 군축 과정이 레바논 국가 내에서 충돌 없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헤즈볼라로부터 무기를 징발하는 것은 이 그룹의 존재 기반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더 이상 헤즈볼라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되라는 조치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모든 것과 확실히 관련이 있는 마지막 결정적 측면은 이스라엘의 행동이다. 이스라엘의 행동이 확대되면 두 가지 상호 지향적 과정이 촉진될 것이다. 레바논 정부는 헤즈볼라를 진정시키거나 무장 해제하려는 목표로 헤즈볼라에 점점 더 압력을 가할 것이고, 이 그룹은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점점 약해질 것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완전히 분쇄하는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이 안보 위협을 억제하려는 단호한(공격적이지는 않더라도) 정책을 곧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워싱턴-테헤란-텔아비브 삼각 관계의 상황 전개는 명백한 이유로 레바논과 헤즈볼라에 계속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헤즈볼라를 죽어가는 백조로 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다. 현 단계에서 헤즈볼라 조직은 갈림길에 서 있으며, 그 선택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새로운 리더십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이 조직의 구조를 재건하고, 레바논 내부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화와 갑작스러운 결과가 전개되는 현재의 국제 정치 상황은 헤즈볼라를 오히려 검은 백조로 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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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g Rustamov는 국립 인문학 대학과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동양학 연구소의 공동 프로그램 석사 과정 학생, 러시아 국제 문제 위원회(RIAC)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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