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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전쟁: 청춘 학파(Jeune École)의 부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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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in: Apr.03,2025
Jun.23, 2025
초록
본 논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치러진 해전(海戰)을 분석해 흑해에서 수행된 우크라이나의 해군 작전 방식이 주요 해군 전략 학파 중 하나인 청년학파(Jeune École: Young school)이론에 어떤 면에서 부합하는지를 살펴본다. 본 논문은 우크라이나가 청년학파의 이론을 적용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 해상 분쟁에서 청년 학파 이론의 한계도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한 후, 우크라이나가 해전을 재래식 함대 간의 대칭적 충돌로 발전시키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흑해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해전은 거인들 간 충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해전의 가장 큰 특징은 재래식 함대 간의 해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교전의 부재이다. 더욱이, 이 논문 후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해전의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연안 지역에서 발생한다. 우크라이나 해전은 1971년 인도-파키스탄 간 해전과 1982년 포클랜드 전쟁과 더불어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파괴적인 해전으로 꼽히지만, 그 수행 방식에는 해안 방어 포대, 무인 항공 시스템(UAS)에 의한 핀프릭(Pin prick) 공격, 공중 발사 미사일 공격, 무인 수상 차량(USV)에 의한 비대칭 작전이 포함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비대칭적 해전과 재래식 해전 간 차이 때문에 군사 행동 수행 방식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더욱이 우크라이나 함대 설계와 해군 전략에서도 큰 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양(blue-water) 학파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과 소위 ‘모기 함대’를 옹호하는 사람들 간의 논쟁에서 두 학파 모두 우크라이나 해군에 가장 적절한 발전 방식과 미래 역량에 대해 강력한 주장을 전개했다. 흑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해전과 우크라이나 군 내부의 갈등의 성격에 잘 맞는 분석적 이론을 채택하기 위해 본 논문은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필립 하워드 콜롬, 줄리안 코벳과 같은 대양(blue-water)학파 (구파) 이론가들과 관련된 이론을 활용하지 않는다. 현대 해군 전략에 관한 문헌은 실제 이 대양 학파와 관련된 개념을 많이 채택했다. 예를 들어, 일본(코벳), 중국, 인도(마한)의 경우가 그러하다. 대양(blue-water)이라는 개념은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해양 강국의 야망과 전략을 해석할 때에는 유익할 수 있지만, 본 논문은 대신 19세기 프랑스 해군 이론가와 실무자들이 발전시킨 해군 이론의 주요 학파 중 하나인 청년학파(Jeune École)를 참조한다. 본 논문 전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청년 학파(JÉ)와 관련된 개념과 논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상 전구와 관련된 발전, 상황 및 논쟁을 설명하는 데 아주 적합하다.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해상 전투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예를 들어, Seth Cropsey는 흑해에 대한 접근권과 통제가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에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Brent Sadler는 대만을 포함한 잠재적 전쟁을 위해 흑해 해전에서 확인된 군사적 교훈을 자세히 설명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해상의 회색 지대 분쟁이 재래식 전쟁으로 변모하는 상황과 의미,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상 무역과 지역 해군력 균형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했다. 최근 연구에서 Md. Tanvir Habib과 Shah Md Shamrir Al Af도 우크라이나 해군의 혁신적인 드론 사용을 탐구하여 흑해 해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접근 방식의 교훈, 조건 및 의미를 추적하였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같은 소규모 국가는 해상에서 비대칭 전쟁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Habib과 Md Al Af의 분석은 비대칭 전쟁에 대한 논의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해군의 전략적 작전을 제시하는 청년 학파에 관한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학자들과는 달리, 마이클 셔킨은 그의 저서 『21세기의 바다에서(Vaincre en mer au XXIe siècle)』, 많은 학자들이 출판 연도를 이유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신의 저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해군에서 사용하는 드론이 '청년 학파’(Jeune École)의 오래된 비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셔킨은 이 아이디어에 대해선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본 논문은 흑해 해전을 다루면서 한 국가의 해군 발전 및 적절한 함대 설계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해군 이론이라는 보다 큰 전략적 논쟁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기존 연구와는 차별화된다. 본 논문의 6장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많은 권위 있는 전통적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청년 학파(JÉ)의 전쟁 방식은 해전을 수행하는 데, 특히 가용 수단에서 훨씬 우월한 상대를 상대로는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적합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본 논문은 19세기에 등장한 청년 학파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현재 진행 중인 흑해 해전에 적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우크라이나가 해상 및 해안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거둔 성공이 청년 학파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입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해상 및 해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고려할 때, 해상 분쟁을 포괄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한 논문이 전부 다룰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따라서 해양 관련 사건들은 본 논문의 연구 설계와 관련성이 있는 범위 내에서만 다루고, 특히 청년 학파의 해군 전략과 관련된 개념들을 뒷받침하거나 기각하기 위해 활용할 것이다. 이것은 본 논문이 해군 작전이 실제 수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논문에서 적용되는 해석 수준에서는 전술과 작전은 대체로 무관하다.
결국, 최근 20년 동안 심도 있게 다루어졌던 반접근 및 지역거부(A2/AD)전략에 대한 논쟁은 본 논문에서 대부분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청년학파와 A2/AD 논쟁 사이에는 개념적 중복이 있다. 특히 소련의 몰로다야 슈콜라(젊은 학파)와 유사한 형태로 청년 학파가 부활한 것과 관련이 있다. 청년 학파는 19세기 말 단 몇 년 동안만 프랑스의 해군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지만, 이 청년 학파 이론은 약 30년 후 새로 수립된 소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소련 연방 초기 어려운 경제 상황과 참담한 소련 해군의 실태를 고려하고 대양 학파의 ‘구식’ 사고방식을 제국주의적이라고 비난한 몰로다야 슈콜라의 지지자들은 소형 수상함, 잠수함, 기뢰, 해안포 및 지상 항공기로 구성된 해안 방어를 기반으로 한 해군 전략을 선호했다. 프랑스 청년 학파와 유사한 비대칭적 수단 사용을 선호하지만 전통적으로 강력한 해군에 대응하는 몰로다야 슈콜라의 전략은 청년 학파와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청년 학파가 공격적인 상업적 약탈에 초점을 맞춘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적의 전투원이 자국 연안에 접근하는 것을 소형 중무장 선박을 사용하여 거부하는 것은 A2/AD, 청년학파 및 몰로다야 슈콜라의 전략 모두에 매우 부합하는 반면, 육상 기반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예를 들어, 전통적인 ‘중앙 기뢰 및 포병 진지’[러시아어: TS͡ entral'naia͡ minno-artilleriĭskaia͡ pozits͡ iia͡], 냉전 시대의 고정형 SSC-1 Sepal, 현대 러시아의 SSC-5 Stooge[러시아어 명칭: Bastion] 및 SSC-6 Sennight[러시아어 명칭: Bal] 연안 방어 미사일 시스템 또는 우크라이나의 R-360 Neptune 대함 미사일11은 모두 A2/AD 이론에서는 필수 요소로 간주된다. 개념적으로 이들 요소는 청년 학파보다는 ‘해안 방어 이론’과 ‘벽돌과 모르타르 학파’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생하는 해전의 모든 측면을 다루려고 하면 서로 다른 해군 전략 학파 간 개념적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 논문은 청년 학파 이론이 제시한 19세기의 원래 주장에서 상당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본 논문은 7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흑해 해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접근 방식을 해석하기 위한 분석 틀로서 19세기 청년 학파의 주요 이론을 간략하게 요약해 설명한다. 2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초기 러시아의 총공세를 성공적으로 견뎌낸 후 러시아 흑해 함대(BSF)를 상대로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이 청년 학파 이론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펴본다. 일반 전쟁과 관련한 청년 학파의 파생 이론들을 상세히 설명한 후, 3부와 4부에서는 이 이론의 적용과 그 한계를 자세히 살펴본다. 본 논문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15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5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해상 핵심 기반 시설을 공격하는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고, 우크라이나의 접근 방식이 청년 학파 이론과 잘 어울린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우크라이나 해군의 미래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논쟁들을 소개한다. 이 논쟁은 해군 지도자들이 청년 학파의 사상에 대해 오랫동안 반감을 품어 왔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본 논문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러 측면들을 다루지만, 결론 부분에서는 ‘구파’인 대양 학파 지지자들과 ‘모기 함대’ 개발을 주장하는 세력 간의 논쟁을 보여준다. 이런 학술적 논의에만 관심이 있는 독자는 6부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궁극적으로 본 논문은 청년 학파 사상의 핵심 요소들이 적어도 좁은 바다에서는 실행 가능한 해군 전략으로서 그 가치를 입증했으며, 따라서 소규모 분쟁 당사자들로부터 보다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Jeune école(청년 학파)의 기원
19세기 프랑스 해군 사상가들은 프랑스 해군보다 훨씬 우월한 전투 함대를 보유한 영국 해군을 상대해야 했다. 더욱이 프랑스 해군은 1870~71년 보불전쟁에서 대영 제국의 거대한 재정 및 산업 역량과 해전에 우선 투입되는 영국의 엄청난 군사 예산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 결과, 청년 학파는 적의 강력한 함대를 피하고 적의 해상 교통로를 목표로 하는 해군 작전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청년 학파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리실드 그리벨 남작은 통상 파괴를 주요 전략으로 제시했다. 즉 그는 이를 ‘가장 가난한 함대에게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자 ‘동시에 적의 강점의 근원을 직접 타격하기 때문에 평화를 회복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종류의 해전을 수행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함대는 순양함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교훈을 얻은 그리벨은 나폴레옹이 전열함(프랑스어: vaisseaux) 건조에 쏟았던 막대한 자원을 ‘파르티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빠르고 잘 무장된 함선 건조에 투자했다면 전쟁 결과가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19세기 후반 이루어진 기술 발전은 청년 학파 이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뢰, 기뢰, 잠수함이 개발되어 주요 수상 전투함은 훨씬 더 취약해졌고, 증기 추진 시스템이 도입되자 서로 다른 적들 간 해전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속한 기술 발전은 청년 학파의 창립자인 테오필 오브 제독으로 하여금 전열함이 미래에 바람직한 해군 함정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오브 제독이 1886년 프랑스 해군 장관이 되었을 때, 비대칭 전쟁 수행에 초점을 맞춘 청년 학파 이론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이기는 했지만 실제 실행되었다. 오브는 전함 생산을 중단하고 대신 순양함, 어뢰정, 포함의 확보를 우선시했고, 프랑스 최초의 어뢰 장착 잠수함인 짐노트(Gymnote)의 건조를 명령했다. 하지만 청년 학파는 오브 장관 재임 기간에도 상당한 저항에 직면했는데, 그것은 특히 법적 문제 때문이었다. 외테 사령관과 부르주아 제독 등 프랑스 해군 장군들은 청년 학파가 무모하고 무자비한 통상파괴(FRA: guerre de course)를 자행한다며 이는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빠르고, 작고, 많은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흑해 함대를 무력화시킨 방법
2022년 3월 말,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속한 승리를 장담했던 러시아의 도박이 참담한 결과로 끝났음이 분명해졌다. 해상에서 러시아는 해상 통제권을 확보하고 우크라이나 해안선 근처의 스네이크 섬을 점령하는 등 나름 성공을 거두었지만, 흑해 북서부에서 예정된 중요한 상륙 작전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몇 주 후인 2022년 4월, 우크라이나는 육상 해상 봉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해안 방위군이 러시아 군함, 특히 러시아의 순양함인 모스크바호를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에 위치한 러시아 흑해함대의 진지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공세에 돌입했다. 전진 진지인 섬에 주둔하고 배치된 병력에 무기와 식량을 재보급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특히 어려운 과제였다. 우크라이나군이 우크라이나 해안에서 섬을 포격하고 섬으로 재보급을 가는 러시아 선박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바이락타르 무인기(UAS)가 스네이크 섬 인근에서 작전 중인 러시아 순찰선과 보조 선박을 겨냥한 공습을 감행하면서 흑대함대는 여러 소규모 부대를 잃었다. 2022년 5월, 러시아는 스네이크 섬 지역에서 3일 만에 무인기 30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수치가 정확하다 하더라도, 비교적 저렴하고 대량 생산된 무인기가 러시아의 육상 및 해상 장비에 미칠 수 있는 피해는 매우 심각했다. 이러한 장비는 고가의 무기로 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개월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러시아군은 마침내 2022년 6월 30일경 스네이크 섬에서 병력을 철수시켰다.
흑해함대가 흑해 북서부에서 철수한 후, 우크라이나는 흑해 지역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해상 봉쇄 작전을 개시했다. 이후 수년 동안 수많은 러시아 군함이 우크라이나 무인기(UAS)의 공격을 받고 때로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코르벳함 이바노베츠(2024년 1/2월)와 세르게이 코토프(2023년 9월 공격/2024년 3월 침몰 추정) 및 전차 상륙함 체자르 쿠니코프(2024년 2월)가 파괴된다는 얘기가 있다. 하비브와 Md Al Af가 주장하듯이,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비대칭적 전략은 본 논문 작성 당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견뎌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공중, 해상, 지상 모두에서 우크라이나의 비대칭적 전략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도록 만들었다.
흑해함대는 전자전 활용 및 해군 자산에 화력을 증강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대응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이 이러한 대응책을 모색하는 동안 그 손실은 누적되었다. 해군 전문가 이고르 델라노에는 2년간 진행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 해군의 드론과 순항 미사일 공격이 주를 이룬 해상 비대칭 전략에 고전하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미 2022년 8월 초, 영국 정보부는 러시아의 순찰 활동이 “크름반도 해안이 보이는 해역으로 제한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크름반도 해안 가까이 항해하거나 항구에 정박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실행 가능한 해군 전략이 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술은 지속적으로 개량되고 전문화된 고속 무인수상정(USV)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무인기 공격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저렴한 무인정를 사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는 대형 군함과 같은 고가의 자산을 공격할 때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큰 이점을 확보했다. 청년 학파의 ‘선구자’인 뢰크순드(Røksund)의 말처럼, ‘속도와 수’를 활용한 전략은 우크라이나 해군 작전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학자들이 청년 학파를 몰로다야 슈콜라(Molodaya Shkola) 학파와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군사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인 올렉산드르 벨모즈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실, 나는 여기서 ‘신생 학파’의 새로운 ‘이론’을 본다. 이 이론은 소형 기뢰-어뢰, 미사일 또는 기타 현재 첨단 무기를 기반으로 해군을 창설한다는 이론으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대형 군함에 대항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 보안 기관에서 공개한 다양한 영상은 드론이 작은 신호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야간에 시야가 어두운 상황에서 공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더 크고 훨씬 더 중무장한 전투원에 대한 야간 어뢰정 공격(청년 학파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FRA: ‘de nuit, l’avantage est pour les torpilleurs‘ - 밤에는 어뢰정이 유리하다])이 자주 보여진다. 본질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흑해함대의 강점을 약회시키기 위해 적용한 수단과 방법은 근본적으로 청년 학파의 이론과 유사했다.
우크라이나가 해상에서 러시아의 우월한 함대에 적용한 비대칭적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이 전략은 청년 학파 스타일의 해전에 대한 21세기 롤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 학파 이론의 두 번째 축인 공격적 통상파괴는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적대 행위 발발 직후 러시아가 보고한 극소수의 사례(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자국 상선 SGV 플로트와 세라핌 사로프스키를 공격했다고 주장)를 제외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왔다. 라울 페드로조가 주장하듯이, 두 러시아 상선을 합법적인 군사 표적으로 규정하는 특정 조건(다음 절 참조)이 없었다면, 이 선박들에 대한 공격은 해전 법규에 위배되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24시간 동안 이 두 민간 선박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 배경이 무엇이든, 해전 관련 공개 정보에 따르면 이는 단발적인 사건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적 민간 선박을 고의로 공격하는 해군 전략을 추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둘째, 2023년 8월 5일 러시아 소식통은 자국 유조선 Sig호가 크름반도 근처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주장은 나중에 우크라이나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소식통에 따르면 Sig호는 군사적 목적으로 시리아로 연료를 운반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Sig호는 ‘적의 전쟁 지원에 동원’되었고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군사적 목표가 될 수도’있었다. 전쟁에서의 군사적 목표에는 ‘전쟁 물자 수송이나 병력 수송 또는 공급’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Sig호는 상선으로서의 보호 대상 지위를 상실하고 합법적인 군사적 표적이 되었다.
셋째, 2023년 7월 20일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7월 21일부터 러시아 항구 또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항구로 향하는 모든 선박은 군수품 운송 선박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발표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유조선 Sig호에 대한 드론 공격과 관련하여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들이 흑해를 항해하는 (모든) 러시아 선박이 이제 합법적인 군사적 표적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경고 조치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둘러싼 상황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엔 곡물 이니셔티브 종료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2023년 7월 20일 모스크바 시간으로 흑해 수역에서 우크라이나 항구로 항해하는 모든 선박은 잠재적인 군용 화물 수송 선박으로 간주된다’고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는 곡물 수출과 관련된 우크라이나 선박, 항구 및 인프라도 군사 표적으로 삼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경제 고문인 올렉 우스텐코가 지적했듯이, ‘러시아가 유엔이 중재한 흑해 곡물 협정에서 탈퇴하고 농산물 저장소와 항구에 대한 일련의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에 대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이었다.’ 노보로시스크 항구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선박의 이동과 전쟁 위험 보험료(해상 보험) 계산에 즉각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양측이 상대국 상선에 대한 공격 위협을 가하자, 연막은 걷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러한 위협을 실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행동을 청년 학파의 틀 안에서 해석하기보다는 (비핵) 억제와 전략적 소통 이론을 활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실제 2023년 7월과 8월 민간 선박 관련 사건을 설명하는 데 이 이론이 훨씬 더 적합하다. 게르 드 코스 전략과 유사한 것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해상 무역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막대한 비용이 소수의 무인수상정에 대한 투자와 비교했을 때 더욱 그렇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상선 보호와 관련된 법적 제약을 우선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청년학파(Jeune école)의 한계 – 법적, 정치적 차원에서
해전법(海戰法)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는 본 논문의 목적을 벗어나지만, 해상전과 관련된 몇 가지 법적 측면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적국의 상선은 합법적인 군사 표적이 될 수 없다. 1936년 런던 의정서는 상선의 지위에 대한 추가적인 보호를 부여하고 잠수함전 규칙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했다:
특히, 정박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거나 방문 또는 수색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수상함이든 잠수함이든 군함은 승객, 승무원 및 선박 서류를 안전한 장소에 먼저 배치하지 않고는 상선을 침몰시키거나 항해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무력충돌법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려면 러시아 상선을 포획 대상으로 나포하거나 러시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포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크라이나 해군은 이 봉쇄 조치를 시행하고, 결과적으로 교전국의 방문 및 수색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거나 행사했어야 했다. 러시아 해안으로의 해상 교통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시행되지 않은 봉쇄의 불법성을 고려할 때, 개별적 적 상선을 나포하고 해안선을 봉쇄하는 두 가지 접근 방식 모두의 경우 우크라이나 해군(및/또는 공군) 병력(수상 전투원)이 민간 선박을 탐지하고, 그 특성과 화물을 확인하고, 선박을 나포해야 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봉쇄를 통과하려는 선박을 나포’하기 위한 봉쇄를 시행하고, 교전국의 방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수상 부대와 필요한 해상 통제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러시아 항구로 향하는 상선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선택지는 기본적으로 해전법에 따르면 없었다. 상선이 보호 지위를 상실하고 합법적인 군사 표적이 되는 데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해군 보조 병력으로 활동하거나, 나포 또는 교전국의 방문 및 수색 권리에 저항하거나, 정보 또는 통신 기능을 수행하는 등의 행위는 금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은 우크라이나가 적국 상선을 상대로 경제전을 벌이는 가상의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호송대를 구성하여 러시아 항구로 향하는 상선이나 러시아 흑해 항구로 항해하는 상선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노력에 통합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무력 충돌 중 상선이 공격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은 적용되지 않는다.
비무장 상선, 특히 소규모 약체 선박에 대한 공격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이지만,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 세기 동안 이런 행동은 자제되었다. 본 논문의 2절에서 설명했듯이, 청년학파가 제안했던 불법적인 해상 전투 방식에 대한 비난은 이러한 학파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통상 파괴에 적용되는 법적 제약 이외에도, 양측이 해상에서 무제한 경제 전쟁을 초래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무력충돌법에 따라 행동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데, 자유주의 국가들이 국제 사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한 것은 규칙 기반 세계 질서와 국제 정치에 대한 규범적 이해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양한 원자재와 식량의 주요 수출국이었으며, 특히 남반구 국가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예를 들어, 2020년 아프리카 15개국은 밀 생산량의 50% 이상을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아프리카가 약 3천만 톤의 곡물 부족과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프리카대륙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배경에서 살펴볼 때,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화물을 실은 상선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전쟁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티모시 헥이 설명했듯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모두 국제 무역을 활용하기를 원했고, 외교적으로 전쟁 지역을 벗어나는 상업 교통을 허용함으로써 수혜국의 호의를 얻거나 얻고자 노력했다.
다시 한번, 여기에서 19세기 청년 학파 논쟁과 유사한 점이 눈에 띈다. 이미 1880년대에 부르주아 제독과 같이 청년학파에 반대하는 이들은 청년 학파가 제안한 전술과 불법적인 해전 행위가 중립국들을 프랑스에 대항하도록 결집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영국과 군사적으로 대결해야 하지만 전력이 열세한 프랑스 해군에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상선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대체로 자제했지만, 해상 상업 및 해상 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해양의 중요 기반 시설과 육상 시설에 대한 공격은 이러한 제약에서 제외되었다. 실제 양측 모두 상대방의 해상 활용 능력을 약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다양한 무기 체계가 해안의 광범위한 해상 목표물에 반복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이 되었다.
흑해에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기반 약화
청년 학파 이론을 해전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한계를 자세히 설명한 후, 다음 절에서는 아조프-흑해 지역에서 벌어진 러시아 해군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과 우크라이나의 공격 대상이 된 해안과 항구에 있는 러시아 해양 인프라를 설명한다.
2022년 10월, 러시아 연안 진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드론 공격은 여러 대의 무인 항공기와 자율 수상정이 세바스토폴 항구를 공격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 해안과 반도 연안에 주둔한 러시아 해군 자산을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예를 들어, 2022년 8월 사키 비행장에서 러시아 해군 항공대를 공격한 사건, 2024년 3월 세바스토폴 항구의 다양한 목표물을 공격한 사건(로푸차급 전차 상륙함 아조프와 야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임), 2024년 5월 카라쿠르트급 코르벳함 치클론을 공격한 사건 등이 있다. 크름반도에 있는 러시아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보고된 직후, 우크라이나가 노보로시스크를 공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 해상 드론이 밤에 노보로시스크의 셰스카리스 석유 터미널을 공격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후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신문에 따르면, 이듬해 7월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곡물 이니셔티브가 종료된 후 우크라이나 항구에 대한 러시아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로 러시아 항구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23년 8월 초,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무인 수상정 올레네고르스키 고르냐크가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노보로시스크 항구에서의 선박 이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우크라이나 드론 조종사들이 노보로시스크로 항해하던 중 여러 상선을 발견한 순간 이를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운항 중 어딘가에서 운영자들이 유조선을 목격했다. 그들은 그것이 표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지 물었다. 유조선은 없다! 중립 수역에서 유조선을 공격하면 우리는 일종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힐 것이다. 당신의 목표는 항구이다. (...)’ 책임자가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분쟁 당사자가 보고한 것이며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민간 선박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 연구에서 청년 학파 접근법의 한계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공해 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분쟁 당사자들은 제3자의 의견을 고려해야 했다.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노보로시스크 항구 공습 이후 ‘국가 지도부는 모든 계층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2024년에도 우크라이나는 주요 해양 인프라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다. 예를 들어, 5월에는 노보로시스크 항구, 투압세의 정유소, 그리고 세바스토폴 만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보고되었다. 2024년 4월 초,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HUR)은 로스토프의 송유관을 공격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아조프해의 유조선 석유 저장소로 석유 제품을 운송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에 따르면, “유조선에 석유 제품을 적재하는 작업이 무기한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화물을 운송하는 상선이 아니라 운송 전 대기하고 있는 생산 및 운송 수단을 공격했다는 개념은 위에서 자세히 설명한 해상 경제 전쟁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후 흑해함대는 흑해 동부로 더 멀리 재배치되어야 했고 러시아는 동쪽으로 정비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으로 타격 지점 범위를 확대하여 러시아의 해상 활용 능력을 점차 약화시켜 왔다. 은퇴한 미국 해군 제독의 말처럼, “러시아 해군 함정에 탑승하고 있다면 흑해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공습 작전의 또 다른 특징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해군의 역량과 전쟁 수행 능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목표물들을 집중 공격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22년 7월과 2023년 9월, 우크라이나가 세바스토폴에 있는 흑해함대 본부를 공격했다고 보도되었다. 러시아의 산업 기반과 물류 인프라에 대한 공격의 예로는 2023년 11월 4일 크름반도 케르치에 있는 잘리브 조선소를 공격하여 아직 취역하지 않은 카라쿠르트급 코르벳함 아스콜드(Askold)를 손상시킨 사건과, 로푸차급 상륙전차함 노보체르카스크를 공격하여 항구 바닥에 침몰시킨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공습으로 중요한 물류 허브로 사용되었던 Feodosia 항구의 주요 정박지 중 하나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파괴적인 공습의 예로는 2023년 9월 13일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흑해함대의 유지 관리 시설인 Sevmorzavod 조선소의 건조 도크를 공격하여 Ropucha급 탱크 상륙함 Minsk와 Kilo-II-mod급 재래식 잠수함 Rostov-on-Don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고 그 결과 Thomas Newdick이 지적한 바와 같이 Sevmorzavod 시설의 건조 도크가 정상적으로 사용될 수 없게 되었다.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적어도 Sevastopol의 흑해 함대 함선 유지 관리 및 수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훼손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2년이 끝나갈 무렵, 전문가와 우크라이나 군 대표들은 수리 인프라 훼손으로 야기된 흑해함대의 심각한 유지 관리 지원 문제를 지적했다. 해양 전구는 희소 자원이 되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장기적으로 누적되면서 해상을 자국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러시아의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었다. 이는 주로 군사적 차원과 관련이 있지만, 전쟁이 진행되고 러시아의 정유소 및 항만 인프라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계속됨에 따라 점차 상업적 차원에서도 악영향이 나타났다. 영국 대표단은 러시아 흑해 전투 함대의 13~14%(2023년 12월), 그리고 이후 25%(2024년 2월)가 파괴되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2024년 3월 26일, 우크라이나 해군 대변인 드미트로 플레텐추크는 당시까지 흑해함대의 약 3분의 1이 파괴되거나 무력화되었다는 우크라이나의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2년 이상 전쟁이 지속된 후 흑해함대의 힘과 존재감은 상당히 약화되었고 영국 국방부 장관 Grant Shapps는 흑해함대를 ‘기능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간주했다. 이러한 흑해함대에 대한 평가는 영국 국방 정보부 업데이트에서 더욱 입증되었다.
결국 흑해함대는 세바스토폴에서 동쪽 노보로시스크까지 함선과 잠수함을 대부분 철수시켰다. 2024년 3월 흑해함대 사령관이 해임된 이후, 흑해함대는 전쟁 발발 이후 가장 활동이 저조했다.
항구와 해안가의 러시아 목표물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공격은 청년 학파의 이론에 어떻게 부합할까? 첫째, 청년학파의 해군 전략과 일반적으로 연관되는 주요 특징은 아니지만, 청년 학파 창시자들이 작성한 기본 문헌에는 적의 해안 시설에 대한 공격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는 주로 테러를 목적으로 한 민간 해안 정착촌 폭격이 포함되지만, 기회가 될 경우 군사 시설 폭격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오브 제독은 다음과 같이 썼다:
바다의 지배자들은 적들이 공격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요새화 여부, 평화적이든 호전적이든 해안의 모든 도시를 공격하고 파괴할 것이다. 도시들을 불태우고 파괴하거나 적어도 무자비하게 몸값을 요구할 것이다.
해안가의 군사 시설에 대한 이러한 공격을 청년 학파와 연결 짓는 언론인이자 이론가인 가브리엘 샤르메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 포격은 전함의 중화학 포가 요새의 저항으로 인해 빠르게 무력화될 위험이 있을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고속 함선에 탑재된 소형 포 뿐임을 보여주었다.
둘째, 청년 학파의 창시자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함축적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크라이나가 해안선의 러시아 기반 시설을 공격한 것은 청년 학파의 접근 방식과 잘 부합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적의 방어선을 교묘하게 돌파하고 예상치 못한 타격을 가하는 수많은 기습 공습과 정밀한 핀프릭 공격으로 구성된다. 우크라이나가 해상 통제와 공중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습 공습은 해상 통제와 공중 우세에 기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공습은 마한의 교리에 언급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1880년대 오브 제독이 이미 제시했던 개념을 현대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특수 무기를 장착한 모든 군함에 증기가 제공하는 엄청난 기동력, 전기·전신이 제공하는 속도와 정보의 보안성, 그리고 철도가 보장하는 전력 집중을 고려할 때, 해안가의 어떤 지점도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증기력을 현대식 발전 방식으로, 전신을 현대식 지휘통제 시스템으로, 철도를 21세기 초 이용 가능한 모든 교통 수단으로 바꿔 생각해 본다면, 오브 제독의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군사적 시나리오를 아주 잘 묘사할 수 있다. 적의 해군이 점한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반복적인 공격, 그리고 그로 인한 소모는 적의 함대를 대칭적 전투를 통해 파괴하지 않고도 장기간 이들 함대의 운용, 유지, 증강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청년 학파 사상의 핵심이다.
물론 오브 제독 시대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비(非)재래식 수단으로 적의 진지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만큼 필요한 화력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거리가 점점 더 길어진 무기 체계의 발전으로, 상대방이 해상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비대칭적 전투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이해당사자의 진지는 상대방의 반복적인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요약하자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열세에 있는 쪽은 상대방 함대와 대칭적인 전투를 시도하지 않고도 상대방 함대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해군 전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물론 해군 전략 사상의 일원인 소위 ‘물질 학파’인 청년 학파의 사고방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따라서 상선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 해상 인프라에 대한 공격의 경우 우크라이나의 접근 방식은 청년학파의 사고방식을 계승하고 보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길: 구식인가, 신식인가?
해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비대칭적 접근과 청년 학파 이론의 채택은 우크라이나가 해전에서 성공을 거두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승리를 전쟁 초기에는 거의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러한 사건들의 중요성이 역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자와 역사 연구자들은 청년 학파를 실행 가능한 전략적 사고방식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아르네 뢰크순드가 자세히 설명하듯이, 테오필 오브가 해군 장관(1886-1887)으로 재임했을 당시에도 프랑스 해군의 대형 전투함대 구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려는 저항을 극복하지 못했다. 1890년대 후반, 2세대 청년 학파 지지자들들도 비슷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1899년 드 라네상이 해군 장관으로 임명될 무렵, 빠른 속도를 가진 소형 함선을 대량으로 보유한다는 생각은 ‘프랑스 해군은 일류 해군을 만드는 핵심 요소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한 적은 수의 고품질 거대 전함에 기반한 해군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뢰크순드가 요약했듯이, ‘프랑스 해군은 청년학파 이론에 따라 어떤 전쟁도 치르지 않았다.’이안 스펠러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에서도 청년 학파의 정책에 대한 합의는 없었고, 프랑스 해군 정책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 결국 청년 학파는 프랑스 해군 정책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는 시도에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청년 학파와 마찬가지로 소련에서도 몰로다야 슈콜라는 소련의 강대국 지위에 더 어울리는 ‘스탈린의 대양 함대’라는 장대한 비전으로 재빨리 대체되었다. 영국의 저명한 해군 역사가의 말을 빌리자면, 몰로다야 슈콜라 학파가 제안한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거둔 역사적 사례가 한 번도 없었는데, 청년 학파는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이러한 호된 평가는 또 다른 저명한 해군 실무자이자 이론가인 소련 해군 사령관 고르슈코프 제독의 글과 매우 일맥상통한다. 고르슈코프에 따르면,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해군 지도부가 추진했던 해군 전략은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U-보트가 연합군 해군과의 전투에서 다른 해군 조직의 지원 없이 홀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해군과 해군 항공대가 연합군의 수상함을 공격할 위험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대잠 작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전쟁에서 수중 전력만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결국 적 함대와 싸울 때 독일 함대의 임무 범위가 크게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결과적으로 고르슈코프는 수적으로는 우세하지만 불균형적으로 개발된 상대를 격파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함대를 강력히 주장한다.
반대로 흑해 해전은 청년 학파 접근법이 적어도 좁은 바다에서 우세한 적의 해군을 무력화하는 데 실제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 사건을 감안할 때 청년 학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신중하게 재평가되어야 한다. 독일 군 지도부가 원래 구상했지만 제 시간 내에 달성하지 못한 Z-플랜의 ‘균형 함대’와는 다른 함대로 2차 세계 대전에서 싸워야 했다는 역사적 논쟁과는 별개로, 전략 연구의 관점에서 논쟁할 가치가 있는 개념적 문제도 있다. 다양한 전문가와 실제 독일 해군 수뇌부가 반복해서 언급했듯이, 독일 해군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직면했던 보다 큰 전략적 조건(예: 함대 규모, 조선 능력을 포함한 전쟁 수행 잠재력 등)때문에 해전에서 패배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해전에서는 승리 조건은 없고, 결과적으로 해상에서 분쟁을 수행하는 목적은 ‘파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고 가능한 한 자원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용해 대규모 연합군을 묶는 것이라면, 청년 학파가 실제 독일 해군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접근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흑해 해전의 경우를 논의할 때 비슷한 전략적 계산을 고려해야 한다.
청년 학파 이론의 또 다른 주장인 ‘통상 약탈’역 시 무의미하다며 일축되곤 했었다. 개별 상선을 표적으로 삼는 것과 관련하여, 대양 해군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T. 마한은 이러한 전쟁 방식을 ‘해전의 가장 취약한 형태’로 간주하며 ‘강한 자를 핀으로 찔러서 일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마한의 주장이 소개된 이후 120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평가 또한 설득력을 잃었을 수 있다. 21세기 초, 세계 해상 무역은 안보 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위험 회피 성향이 더 커졌다. 더욱이, 선박 소유국, 선주, 화주, 선원, 용선자 간의 구분은 해상 무역에서 ‘국익’을 크게 약화시켰다. 그 결과, 흑해 해전이 시작될 무렵 흑해 북서부에서 발생한 적대 행위는 – 항구 폐쇄 및 우크라이나 당국의 상선 출항 금지와 같은 다른 요인들을 제외하지 않고도 – 우크라이나를 오가는 상선 운송의 급격한 붕괴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2023년 노보로시스크 항구와 시그(Sig)호에 대한 공격이 해상 무역에 미친 엄청난 악영향은 이미 언급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크라이나가 노보로시스크, 타간로크, 타만, 투압세와 같은 항구에 기항할 예정이었던 소수의 상선을 공격하거나 침몰시킨다면, 이는 아조보-흑해 유역 전체에서 러시아 해상 운송에 파괴적인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통상 전쟁에 관한 한, 그 제한 요인은 군사 작전적인 측면보다는 법적·정치적 측면이 더 컸다. 청년 학파와 관련된 전쟁의 일부 측면은 19세기에 이미 부도덕하고 국제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정치-법적 상황의 무게와 ‘정당한 전쟁’을 치러야 할 필요성은 21세기에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특히 가치 중심 공동체인 서방의 지원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에게 해당된다.
요약하자면, 청년 학파 이론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접근법은 우크라이나에 2년 넘게 흑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해상 거부 접근법에 기반하여 해상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심각한 제약에 직면하게 된다. 해상 통제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모든 군사 작전은 우크라이나 해안선 바로 근처에서 수행되지 않는 한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역량을 벗어난 것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시추 플랫폼에 상륙했다고 보고된 사례가 있다. 이러한 모든 추상적인 고려 사항을 염두에 두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응용) 해군 전략에 대한 논쟁은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우크라이나의 시각에서 볼 때,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서부 흑해에서 밀려나 상당한 손실을 입은 이후, 우크라이나 해군의 미래 발전과 해상 전투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접근 방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대칭형 해군력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2021년에 발표된 ‘우크라이나 해군 교리’는 야심 찬 전략 문서였다. 기존 함대 구성의 건설 및 현대화를 통한 함대 구성과 확장과 관련하여 이 교리는 ‘신세대 미사일 보트, 다양한 종류의 상륙함, 영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 보호를 위한 순찰선 및 보트, 무인 수중 차량, 다양한 유형의 신형 공급선’과 ‘신형 기뢰전 선박 및 소형 잠수함의 건조’를 자세히 설명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우크라이나 해군 교리’가 2030년 이후 우크라이나 해군 개발의 최우선 순위로 ‘대양에서의 해상 통제’ 능력을 정의하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크라이나가 영국의 능력 개발 이니셔티브를 통해 호위함을 조달하고 Volodymyr Velykyi급 코르벳의 설계를 개발하려 한다는 생각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해군이 2014년 재탄생해야 했던 시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는 대담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우크라이나 해군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그 장엄함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이러한 비전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해군의 방공 능력을 강화하고, 장거리 타격 능력을 확보하며, 다양한 종류의 수상 전투함을 실전 배치하고, 상륙 차량을 갖춘 추가 해군 보병 여단 형태로 상륙 전력을 창설해야 한다. 이러한 역량 확대는 해상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을 점진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해상 통제권을 확보하면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으로 상륙 작전을 수행하고 흑해 연안에 해상 봉쇄를 구축하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스탄불 RMK 해양 조선소에서 우크라이나 해군을 위한 밀젬(Milgem) 코르벳을 건조하고 영국-노르웨이 해상 역량 연합을 통해 확보한 능력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이다.
반면, 다른 해군 세력은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견해에 반대한다.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비대칭적 접근법을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우크라이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러시아 함대와 대칭적 해전을 벌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함대의 설계는 비대칭 교리를 적용하는 소규모 해군 자산으로 구성된 소위 ‘모기 함대’에 기반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2018년 ‘우크라이나군 2035 해군 전략’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략의 첫 두 단계에서 해상 전력의 회복은 ‘모기 함대’의 함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 모기 함대 육성 정책은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속도, 기동성, 무장 덕분에 이러한 모기 함대는 고전적인 수상함에 내재된 거의 모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해안에서의 항해 성능과 작전 범위는 훨씬 낮다.
우크라이나 전략 문서에서 ‘모기 함대’라는 용어가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지만, 우크라이나 해군의 공식 담론에서는 이러한 청년 학파 용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세부 사항은 우크라이나 민간 평론가들이 몰로다야 슈콜라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는 대조된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아래에서 언급하겠지만 주로 우크라이나 해군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흑해 지역에서수행한 해전에 대한 실제 접근 방식을 고려할 때, 청년 학파가 주장하는 바와 유사한 방식을 택했다는 점은 언뜻 보기에도 놀랍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 국방부 차관인 이호르 카바넨코 제독이 지적했듯이, 이 용어[몰로다야 슈콜라 - 저자의 말]는 우크라이나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 전문가들이 대부분 영국과 미국의 자료를 참고하여 구식 해상 전력 및 해상 지배 학파[소련/러시아/우크라이나 용어로 영어 용어인 “바다의 지휘권” - 저자의 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대륙해에서 전쟁을 치르는 중요한 경험을 놓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2020년 이후의 발전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식적인 우크라이나 해군 담론에서 청년 학파에 대한 상대적인 침묵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카바넨코가 주장하듯이, 21세기 2030년대로 접어들 무렵 우크라이나 해군 전략은 방향을 전환했다. 모기 함대와 관련된 구상은 포기하고, 후속 문서[2021 독트린 - 저자 주]는 대신 야심찬 대칭적 대양 해군 건설과 그에 걸맞는 행동을 요구했고, 이는 결국 예산 자원 과다하게 사용과 매우 값비싼 장기 투자를 초래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020년 6월, 올렉시 네이즈파파가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구식’학파 추종자인 네이즈파파는 재래식 해군력 강화를 선호했다. 2023년 12월 런던 애드미럴티 하우스에서 열린 영국/노르웨이/우크라이나 해상 역량 연합 출범식에서 네이즈파파는 2035년까지 역량 있는 재래식 함대 육성을 위한 장기 계획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강력하고 역량 있는 해군은 러시아의 해상 공격을 억제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번영과 지역 안보를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해군 발전에 관한 2021년 전략 문서가 급격한 방향 전환을 보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다양한 출처에서 지적했듯이 우크라이나의 가장 성공적인 해상 자산인 해군 드론은 해군보다는 주로 민간(SBU)과 군(HUR) 정보 기관에 의해 운영되어 왔다. 두 번째 학파를 지지하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러한 거대 함대 보유 야망을 비판적으로 본다. 안드리 리젠코(Andrii Ryzhenko) 대령이 주장하듯이, 우크라이나 해군 지도부가 구상한 대로 재래식 거대 함대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엄청나게 비쌀 것이다. 특히 효과적인 해상 거부 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현 우크라이나 해군 전략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자원이 훨씬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카바넨코, 리젠코 및 이러한 청년 학파의 주장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아이디어는 청춘 학파 사고의 오랜 전통에 기인할 수 있다. 본 논문 전반에 걸쳐 저자는 우크라이나 안보 기관들이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수단과 방식이 청년 학파 스타일의 해전과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런 평가는 처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술적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흑해 해전 접근 방식을 청년 학파(Young School)의 사고방식과 동등하게 비교했던 벨모즈코(Vel’mozh͡ ko)와 같은 민간 전문가들과는 달리, 2020년 이후 우크라이나 해군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청년 학파 이론에 기반한 전략을 추구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오히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당시 정책 결정자들에게 청년 학파는 직접적인 영감의 원천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해군 지도부는 구파(Old School)의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고, 전통적인 대칭형 해전 능력을 선호했다.
청년 학파(Jeune École)의 부활?
상선 공격에 대한 논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상선을 실제 공격 또는 나포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봉쇄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일부 수상 전투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그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2022년 2월 본격적인 러시아의 침공 이전에도 여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해군 전략 변화와 공격적인 해상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균형적 함대 구축이라는 야심 찬 계획을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획이 비현실적이고 자원 낭비라고 주장하며, 효과적인 ‘모기 함대(Mosquito Fleet)’ 창설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대부분 육상 전투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는 해상 역량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투자할 것인지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러시아는 2022년 가을부터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를 상대로 벌여 온 공습 작전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상당한 장거리 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해군이 전쟁 기간 동안 누린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적군이 모기 함대를 추적하고 무력화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이 큰 무기고에 실질적인 물체(군함)를 도입하면 우크라이나는 상대적 이점을 잃고 러시아의 쉬운 목표물이 될 것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앵글로색슨 스타일의 ‘구식’ 대양 함대 이론이 우크라이나 해군에 가장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고르슈코프가 주장하듯이, “모든 국가의 각각의 해군이 갖고 있는 특수한 필요성을 감안하면”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모델로 삼아 그런 대양 함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리젠코는 적어도 아조프-흑해 지역의 폐쇄된 전선에 관해서는 비대칭 전략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이 옳다. 그의 말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작고 빠르며 기동성이 뛰어나고 무장이 잘 갖춰진 함정과 무인 항공기 및 수상 차량으로 구성된 잘 갖춰진 ‘모기 함대’는 우크라이나 해군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강화하고, 현재 러시아가 공중과 해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제한적이고 분쟁이 많은 지역에서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청년 학파와 소련의 몰로다야 슈콜라(Molodaya Shkola)의 운명을 생각해 보면, 해군 지도자들은 청년 학파의 교리를 넘어 재래식 함대(옛날에는 전투함대)를 확보하려는 거의 본능적인 욕망을 품고 있었다. 오브, 그리벨, 그리고 청년 학파의 다른 창시자들이 등장한 지 130년이 넘은 지금도 그러한 유혹은 여전히 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청년 학파의 주장에 기반한 전략을 추구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양 해군 전투 능력 확보로 회귀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우크라이나 해군 지도부는 이러한 수로를 계속 따라가기 전에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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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ias Kollakowski는 독일 국방전략연구소, 헬무트 슈미트 대학교/함부르크 연방군 대학교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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