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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관계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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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in: Dec.04,2024
Jan.31, 2025
동맹의 사회적 차원
워싱턴 조약에 서명한 국가들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는 민주주의의 특징을 가진 기구이다. 즉, 민주주의에서는 정부가 자국의 안보 정책을 수립할 때 국민 여론에 크게 의존한다. 민주 국가에서 국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점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다.
이 컨퍼런스의 제목에서 제기된 질문, 즉 대서양 관계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나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논리적인 답은 상식에 부합하는 답이며, 그것은 나토 회원국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나토 동맹국들은 공통된 비전을 가지고 있나? 나토가 창립된 1949년 때처럼 이익을 공유하나? 그들은 나토가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으로 단합된 하나의 공동체라고 믿나? 그들이 “집단 방위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이러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않으면 이 분석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추측의 영역으로 모험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며, 따라서 현 시대의 특징들을 고려하면 명확한 답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 또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현 시대의 첫 번째 특징으로는 여론이 크게 분열되어 있어 국가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은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일으켜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적 엘리트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전통적 정당은 사라지거나 의석을 잃고 있으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여 수년간 우리가 함께 해 온 많은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 사회는 10년 전처럼 나토 동맹의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더 이상 갖지 못한다. 우리가 직면한 실제 위험, 도전 및 위협이 무엇인지에 대해 큰 혼란이 있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두 번째 특징으로는 나토 동맹국 정부의 수장 중 글로벌 리더십을 행사할 만한 역량있는 저명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기에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확고한 리더십이 없으면 시민들 사이에 충분히 공통된 입장을 형성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세 번째 특징으로는 나토가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경험적 인식이 많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경우 유럽 동맹국들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해 온 미국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워싱턴 조약 제5조를 활성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대다수 국가는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교전 규칙’ 뒤로 자신을 숨겼다. 목표는 승리에 전념하는 것보다 미국을 따르는 것이었다. 미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관된 목표와 전략을 유지할 수 없었고, 이는 굴욕적인 패배로 이어졌다. 결국 같은 사람들이 권력을 되찾는다면 생명과 돈을 낭비하는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제대로된 첨단 무기가 부족한 민병대에 패배한다면 나토의 기술적 우월성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군의 무능함, 제한된 전투 역량, 끔찍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의 상당 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계속 진군하는 것을 관찰했다. 일반 시민들은 우크라이나의 모든 영토를 되찾아주기로 결심한, 훨씬 부강한 나토 동맹국인 우리의 전략이 우크라이나를 불행한 상황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에게 필요한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공식적으로 약속한 승리를 우크라이나에게서 빼앗았을까?
현 시대의 네 번째 특징은 이전 것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 맥락에서 일반 시민이 나토 동맹을 신뢰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일반 시민들이 국가의 틀 내에서 자신의 피난처를 찾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손에 놓여 있는 나토 동맹이 그들을 삶에 중요하지도 않은 시나리오로 끌어들일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일반 시민들의 나토에 대한 불신은 나토만이 그들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는 직감만큼이나 정당하다. 이 경우 안보에는 자유와 복지가 포함된다.
오늘날 나토는 어떤 조직인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복잡한 국제 상황에서 32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조직인 나토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증진하는 데 전념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터키, 헝가리 또는 스페인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나토 내 다른 방향으로 향해 가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지 충분히 증명된다. 유럽 정치 시스템의 진화를 보면 위에서 언급된 터키, 헝가리 등의 사례가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유럽 정치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올바르다. 하나의 공동체인 나토가 “집단 방위 시스템”을 구성한다는 생각은 희망의 영역에 속한다. 나토가 “집단 방위 시스템”이었으며, 이러한 아이디어에 따라 지속적으로 행동해 온 동맹국이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형식적인 것을 제쳐두고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관계를 평가할 때 우리는 동맹으로서의 엄격한 조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토는 현재 상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잃고 싶어하지 않는 자산이다. 나토의 강점은 위협에 대한 공통된 인식, 회원국 간 연대, 이용 가능한 역량 또는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전략 공유에 있지 않다. 나토 회원국이 나토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75년간 함께 한 경험으로 축적된 유산,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국제 사회,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개별 국가의 방위 역량이라는 현실에 대한 깊은 불안감 때문이다. 나토 동맹 밖 상황은 더욱 차갑다. 실제 미국을 제외하고는 어떤 나토 회원국도 “전략적 행위자”로서 행동할 만큼 강력한 방위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것이 바로 나토 회원국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대응하려는 동인 또는 출발점을 제공한다. 우리(나토 회원국)는 역사, 제도적 틀, 민간 및 군 기관, 전투 교리, 자원...을 가지고 있어서 맨 땅에서 시작하지 않고도 잘 적응할 수 있다.
유럽의 관점
최근 나토에 가입한 유럽 국가들은 유럽 연합이 “전략적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과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효과적이고 유능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무능한 유럽 연합에 대한 가혹한 현실 사이의 양 극단을 경험했다. 동시에, 이들 국가들은 미국의 변덕스러운 외교 정책과 성공적으로 외교 이니셔티브를 완수하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함 때문에 미국을 경멸했지만 이제 국제 정치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기력을 경험하여 다시 한번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 아래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한다.
유럽 통합 과정의 움직임들이 유럽 연방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단일 통화로 표현되는 개별 국가 주권의 양도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정치적으로 통일된 유럽”을 창설한 이정표였다. 점진적으로 우리는 은행 연합, 유럽 통화 기금과 같은 단일 재정 정책 마련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경제 및 통화 정책의 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공동의 경제적 이익이 실현되려면 공유된 법적 틀과 통일된 외교 정책이 모두 요구된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요소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우리는 민족주의적 편견을 극복하고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우리가 공동의 문화적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만큼 엄청난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우리가 수십 년 전 Miguel Herrero 와 Rodríguez de Miñón이 언급한 “유럽인”이라는 의식의 형성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공공 정책을 유럽 기구에 위임하지만, 여전히 한 유럽 국가의 국민으로서 주권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역사와 지리는 중요하며, 우리는 아직 공통의 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엄청난 도전에 믿을 만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럽 대륙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함께 계획하고 동일한 역량을 갖는 것의 이점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실행 가능성이다. 유럽 연합은 여전히 미국의 리더십을 대체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이러한 겸손한 깨달음은 나토에 유리한 에너지를 공급하여 나토로 하여금 새로운 국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의 실행이 불가피하다고 느끼게 한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워싱턴 조약, 특히 제5조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주, 사이버, 인지라는 새로운 영역의 출현과 하이브리드 전략의 개발은 나토의 근간 중 일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알고는 있지만 지나치게 신중함을 보이며 워싱턴 조약의 개혁에 나서지 않고 단지 그런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유럽 상황이 더 이상 나토가 창설된 1949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 시대”에서 승리하기 위한 “강대국 간 경쟁”이 우리가 통합해야 할 유럽에 대한 상당히 다른 시나리오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위치에 있지도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리적 영역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미국의 관점
미국이 건국된 이래로 미국 사회는 고립주의적 사명과 대외 무역에 대한 의존 사이의 모순 속에서 살아왔다. 미국은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선 항해의 자유, 법적 보안, 원자재에 대한 접근, 다른 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데, 이를 위해선 미국의 국제적 역할이 필요하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등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미국이 국제 안보에 헌신해야 하며, 미국의 국가 이익을 보장하는 국제질서를 수립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국제 분쟁에 여러 해 동안 개입한 후, 고립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고전적인 펜듈럼 효과로 커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반 대중들이 공개적으로 대서양 동맹에 미국이 가입되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나토가 미국의 안보를 보장하는가?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 직전 몇 년 동안, 나토를 하나로 통합할 위협, 나토를 이끌어나갈 전략, 동맹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 모두 나토에게 부족하다는 것이 명백했다. 따라서 2기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나토의 표류에 대해 경고하거나 나토 탈퇴를 위협하는 성명을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많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이 국방비를 적게 지출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언급되었다. 국방 분야에 대한 투자 없이 군 및 무기 현대화가 있을 수 없고, 투자 없이는 나토 회원국 군대간 공동 행동을 방해하는 기술적 단절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려되는 것은 이것이 미국에 대한 유럽의 학대와 무시의 측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따라서 유럽 반대편에 위치한 우리가 느끼는 반응은 강렬하다. 우리가 평균적인 미국인이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의 복지에 돈을 쓰는 반면, 유럽인들로 하여금 경제적, 인명의 측면에서 우리의 안보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투자 부족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나토 회원국 간 공유된 비전과 전략의 부재이다. 하지만 우리의 논쟁이 도구적 요소인 투자에 집중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유럽 동맹국들에게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국방비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 나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도 쉽지 않거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이루어진 몇 안 되는 합의 중 하나는 중국을 미국의 주된 경쟁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경제, 외교, 국방 정책은 모두 중국을 겨냥해 돌아간다. 2022년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서 승인된 전략 개념에서 우리는 중국이 우리 모두에게 “체제적 도전 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단정적인 주장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정책을 도출했을까? 이에 대처하기 위한 대서양적 비전이 있나? 대서양 양끝에 위치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이 위대한 아시아 강대국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공통된 입장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나토 동맹이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온 또 다른 문서에 따르면 우리는 러시아가 “위협 세력”이라는 지적을 발견하는데, 이러한 지적은 미국 양당 지도자들의 의견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쪽에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처럼 중요한 나토 문서가 승인된 지 불과 2년 반 만에 미국은 마치 이러한 문제가 자기들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도 없다. 이러한 태도는 무책임의 극치이다.
형식적인 측면을 제쳐두고, 러시아는 미국에 위협이 되는가? 동유럽에서의 러시아의 행동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바이든의 행동은 오늘날의 국제상황과는 동떨어진 냉전 시대 참전 용사를 대변한 것이었나? 대서양 동맹의 수립은 제2차 대전 종식 직후 미국의 지도자들이 소련이 대서양 지역 국가들의 국가 이익에 위협이 된다고 확신시킨 결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서양 지역 국가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들 국가들이 우려한 것은 잔혹한 2차 세계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 국가들의 극도의 취약함, 민주주의 문화의 부재, 이러한 가운데 불안과 불확실성을 부추기는 전체주의의 발호, 그리고 유럽 대륙이 또 다시 제3차 세계 대전의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유럽 정부들은 당연히 소련으로 부터의 압박을 느꼈다. 소련 군이 점령한 지역은 민주적 대의 기관이 몰락하고 있었고, 독일은 중립과 분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으며, 공산당은 나치 세력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한 덕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주요 국가에서 많은 의회 의석을 차지했다. 미국 분석가들에게 있어 소련의 위협에 대해 유럽이 느낀 인식은 다소 과장되었지만 그러한 인식은 우려스러울 수 있었다. 미국은 유럽의 분열과 전체주의로의 표류를 막기 위해 유럽 재건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유럽 국가들의 표류는 미국의 국가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마셜 플랜과 대서양 동맹이라는 두 가지 기둥에 기반해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NATO는 유럽 대륙의 응집력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도구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민들의 고립주의적 요구, 관세 장벽을 세워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필요성, 공급망 및 유통망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 중국의 이니셔티브에 대응하여 다양한 지역 블록 간의 동맹 또는 이해 관계를 강화해야 등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들은 우리 시대의 특징인 포퓰리즘 선동 정치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집합이지만, 일련의 위기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의 시대에서 이에 대한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결정을 내릴 시간
직원이 거주하는 조직은 기능을 계속하기 위해 어떤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격을 갖춘 직원은 한 사무실에서 다른 사무실로 서류를 옮기고 자신의 전문성과 운영 효율성을 과시한다. 그러나 NATO와 나토 동맹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토 동맹은 의미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필요한지 의문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앞으로의 몇 년은 나토의 미래에 결정적일 것이다. 우리는 일련의 상황과 토론에 대한 결정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나토와 양 대서양 지역 사이의 연결 이슈를 결정할지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나토 창설 때에서 처럼 그 연결 이슈는 안보 사항을 훨씬 넘어설 것이며, 이 이슈들은 나토 공동체를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대서양 관계의 핵심 이슈이며, 우크라이나 국가의 존립 자체가 의문시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인다. 우리는 러시아가 새로운 세력 균형에 관한 합의에 도달하려는 외교적 시도 이후 발생한 유럽 대륙의 분쟁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는 자국 영토의 인접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유럽 대륙에 주둔한 미국 핵무기를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 정부는 나토와 유럽 연합의 동진에 위협을 느꼈고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세 번째 군사 작전과 한때 소련의 일부였던 영토에 대한 다섯 번째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이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양자 논리로 이해할 수 있는 군사 작전이 아니라 부활한 러시아 제국주의가 자신의 역사적 영향력 지대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나토가 현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러시아의 마지막 침공도 아닐 것이다.
유럽인들의 대응도 실망스러웠다. 몰도바, 조지아, 크름 반도, 돈바스 등 이전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그들의 대응은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였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모두 과거 뮌헨에서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한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즉, 침략자에게 침략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해 주면 침략자가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이것은 침략자에게 새로운 확장적 군사적 모험을 계속하고 준비하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태도는 슬라브-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짜증과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러시아 정부 하에서 벌어지는 사태 발전에 결코 속지 않았다. 유럽 강대국들은 러시아의 침공 의지에 대한 미국 정보부의 경고를 믿지 않았고,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대응은 너무 늦고 형편없었다. 이 모든 것이 국방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투자 부족이라는 오래된 문제와 결합되어 유럽 군대를 비효율적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방위 산업은 단시간 내에 필요한 군사 역량 강화 요구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유럽인들이 국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미국에 기생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면, 유럽 동맹국에 대한 유럽 엘리트들의 좌절은 이해할 만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활용해 나토 동맹을 재건하려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적, 군사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쟁 승리를 포기하고 대신 소모적 전략을 펼침으로써 많은 우크라이나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전쟁 피로감을 키웠다. 그 결과, 러시아의 계획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희생시키면서 러시아와 실현 불가능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유럽의 좌파와 우파 모두는 새로운 정치적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틀 내에서 기술적 패권을 달성하기 위한 강대국 간의 경쟁이 두드러지는 새로운 국제 관계에서 유럽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유럽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익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중국의 가신(家臣)이 되었고, 서방의 응집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중국의 도구가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무리 무책임하고 무능하더라도 유럽 동맹국에 등을 돌리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경쟁자인 중국에게 패권 지위를 내줄 수도 있게 된다. 게다가 보호주의적인 무역 정책은 유럽 국가로 하여금, 유럽 연합 자체가 대안이 되지 못하면, 중국에서 대체 시장을 찾도록 만들 수도 있다. 미국의 세계 무대에서의 철수는 대륙 세력 간 분열과 두 초강대국 간의 중도적 입장 추구를 촉진하게 만들 것이다. 관세나 국방 투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걸려 있는 데, 그것은 우리가 공동체인지 아닌지,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함께 맞설 것인지, 아니면 분열를 선택할 것인지의 여부이다.
대서양 동맹의 틀 안에서 미국은 특히 귀중한 동맹국으로 영국과 슬라브 및 스칸디나비아 국가를 곁에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는 러시아가 무력으로 유럽의 국경을 변경할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러시아에게 승리를 의미할 수 있고, 반면 유럽 동맹국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조치이다.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조차도 그의 수사(修辭)와는 달리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뮌헨 함정에 빠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결국 그는 과거 영국 체임벌린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국에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확장주의를 억제하기 위해 유럽 동맹국들에게 의지해야 하며 서방 공동체의 응집력을 업데이트하고 유지하려는 의지를 중국에 매우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업데이트를 위해서는 유럽 동맹국들이 이번에는 실제로 국방 투자를 약속하고 필요할 때에는 자신의 역량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토는 또 전략도 필요하다.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승인된 개념은 단지 이를 개발하기 위한 정치적 틀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위협”과 중국이 제기하고 있는 “체제 도전”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그 전략 개발을 주도해야 한다.
중동 위기는 수년간의 외교적 노력 끝에 마련된 두 전선, 즉 “아브라함 협정”과 저항의 축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은 가자 지구에서 가혹한 군사 작전을 낳았고, 이 때문에 이슬람 무장단체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은 심각하게 손상되었으며, 헤즈볼라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전장은 레바논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이란은 방위 산업, 대공포 시스템,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핵 네트워크가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정보 시스템은 굴욕을 당하고 기능이 크게 저하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자 지구 주민들이 입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협정으로 형성된 연합 세력은 하마스의 협박과 이에 굴복하는 대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결된 상태를 유지했다. 반면 유럽은 분열되어 있고 전략적 비전이 부족하며, 중동 사태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저항의 축 국가과 동맹하지 않은 아랍 국가 정권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도구적 갈등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가자 지구 주민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 이스라엘에 가하는 비판은 하마스가 그들을 인간 방패로 만든 책임과 하마스의 협박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스라엘의 군사 캠페인이 계속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아랍인, 이스라엘인, 유럽인)에게 초래되었을 비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저항의 주축국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우리가 그렇게 쉽게 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가자 지구 전쟁 기간 동안 유럽 연합의 요구를 따랐다면 2차 세계 대전 동안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중동은 대서양 동맹에게 중요한 공간이다. 미국이 전략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경솔하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행동한 많은 유럽 동맹국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유럽에 등을 돌리기로 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반(反)유대주의와 관련된 행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다. 아랍 국가들은 가자 지구나 레바논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유럽의 민감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내부 전복, 비대칭 전쟁, 핵 위협이라는 도전을 제기하는 저항의 축에 직면하여 미국과 이스라엘의 보호막 아래에서 안보를 추구한다. 새로운 나토 동맹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억제하고 온건한 정권을 통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메나(MENA) 지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지역의 불안정성을 이용하여 침투해 우리의 사명을 방해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남부 전선의 불안정성은 그들의 전략적 목표이며, 이러한 불안정은 이 지역에 이주와 불안을 조장하고, 나토 동맹과 유럽 연합 내의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아랍-이스라엘 연합은 미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을 불신하지만 유럽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이 아랍-이스라엘 연합을 지지하고 저항의 축에 반대하는 나토 동맹의 확고한 입장만이 이들 지역의 상황을 극복하고 나토 동맹의 응집력과 이 지역에서의 권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나토 창설로 이어진 과거의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 그것은 역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나토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존재이다. 상황은 바뀌었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가치와 이해관계의 공동체인 나토는 여전히 동일하다. 이런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은 우리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없는 세력에게만 이로울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그것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인식과 높은 수준의 외교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시대에 맞는 리더십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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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tentino Portero는 Civismo 재단의 선임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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